<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 - 조르주 베르나노스
지옥이란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천국은 온갖 보석으로 화려하게 꾸며진 곳, 지옥은 뜨거운 불이 활활 타오르는 곳이라는 도식에 너무 갇혀 있던 건 아닌지.
‘사랑’ 자체이신 그 분과의 관계로 볼 때 지옥은 ‘사랑’에서 끊어진 곳이리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니…
불구덩이보다 더 무섭지 않은가?
더 이상 ‘사랑’이 없다면.
부유하건 가난한 건, 거울을 들여다보듯 가난에 너희들 자신을 비춰 보아라. 왜냐하면 가난은 너희들의 근원적 실망의 형국이요, 이 지상에 자리한 실낙원이요, 너희들 가슴과 양손의 공허니까. 너희들의 간특함을 내 잘 알고 있기에 나는 가난을 그리도 높이 들어 올리고 그 가난과 혼인하고 그 가난에 왕관을 씌운 것이다.
우리 신부에게는 어쩌면 악덕이 어떤 미적지근함보다 덜 위험할 수도 있지 않을까? 뇌가 무르는 경우가 있다. (이성적 해이) 마음이 무르는 것은 더 고약하다.
사람들은 신부님의 순박함을 증오하는 것이 아니고 그 순박함에 대해 자신을 방어하기에 급급한 것이죠. 신부님의 순박함은 그들을 태워 버리는 불길 같은 것이죠. 당신은 양치기 지팡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정작은 횃불을 움켜쥐고 용서를 청하는 겸손하고 측은한 미소를 띠고 이 세상을 오가는 터. 필경 저들은 열에 아홉 번은 그 횃불을 당신 손에서 빼앗아 발로 뭉개 꺼 버릴 겁니다.
“… 인간은 자신을 탕진해서만, 제 고유한 실체를 희생해야만 기쁨을 누리죠. 기쁨과 괴로움은 결국 하나입니다.”
“당신이 기쁨이라고 부르는 것은 필경 그럴 겁니다. 하지만 교회의 사명은 그 잃어버린 기쁨의 근원을 되찾아내는 데 있습니다."
만일 내게 언젠가 사제서품 때의 언약을 어기는 불행이 닥친다면 나는 그것이 자네가 말하는 지적 발전의 결과 때문이라기보다는 한 여인을 사랑해서 생기는 일이면 더 낫겠네
자기 자신을 미워하는 일은 생각보다 쉬울 것이다. 은총은 자기 자신을 잊는 일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 안에서 모든 교만이 사라져 버린다면 은총 중의 은총은 자기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지체 중의 그 어느 지체처럼 사랑하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