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드러내는 일
식성이 좋은 편이라 세상 어디 가도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는 나지만,
'속으로 싫어하는*' 음식이 몇 개 있다.
(*사람들 앞에서 맛있게 잘 먹을 수 있지만, 굳이 먹고 싶지 않다는 뜻)
특히 미역국은 생일에도 절대 먹지 않는다. 심지어 아이를 출산하고 병원에서 내가 선택한 메뉴는 토스트와 커피, 오렌지주스였다. (해외에서 출산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출국을 며칠 앞둔 나를 위해 엄마가 차려준 밥상.
그 밥상에는 정확하게 내가 싫어하는 음식 3개가 올라와 있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바로 미역국과 흰쌀밥, 잡채.
다행히 다른 음식도 있어 맛있게 저녁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특히 새콤하게 무친 가지무침은 최고였다.
그럼에도 가슴속이 좀 시렸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엄마의 잘못이 아니다.
싫어하는 음식이나 좋아하는 음식을 포함해서, 나에 대한 이야기를 드러내고 한 적이 없어서 엄마는 몰랐을 것이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가장 힘든 일 역시 나를 드러내는 일이었다. 사실은 진짜 내 모습을 드러내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으면서, 여전히 내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 시도할 때마다 살갗을 벗겨내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져, 결국 얼른 두루뭉술한 문장 뒤에 숨곤 한다.
엄마가 차려준 밥상 앞에서 용기를 내어 말했다. 미역국과 잡채를 싫어한다고.
엄마는 나보다 더 놀란 것 같았다. 괜히 미안했지만 이야기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하는 딸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음식조차 끝내 모르고 살아가게 된다면, 그거야말로 엄마에게 더 큰 슬픔이 되지 않을까.
이제 겨우 새끼손톱만큼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