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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Sep 07. 2020

엄마가 차려준 밥상에는 내가 싫어하는 음식이 가득

나를 드러내는 일

식성이 좋은 편이라 세상 어디 가도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는 나지만, 

'속으로 싫어하는*' 음식이 몇 개 있다. 

(*사람들 앞에서 맛있게 잘 먹을 수 있지만, 굳이 먹고 싶지 않다는 뜻) 


특히 미역국은 생일에도 절대 먹지 않는다. 심지어 아이를 출산하고 병원에서 내가 선택한 메뉴는 토스트와 커피, 오렌지주스였다. (해외에서 출산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출국을 며칠 앞둔 나를 위해 엄마가 차려준 밥상.  

그 밥상에는 정확하게 내가 싫어하는 음식 3개가 올라와 있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바로 미역국과 흰쌀밥, 잡채. 


엄마가 나를 위해 만들어준 미역국과 잡채



다행히 다른 음식도 있어 맛있게 저녁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특히 새콤하게 무친 가지무침은 최고였다. 

그럼에도 가슴속이 좀 시렸다. 


가지무침 하나로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누가 나를 위해 이렇게 정성껏 많은 요리들을 해줄까. 그래도 엄마.


가만히 생각해 보니 엄마의 잘못이 아니다. 

싫어하는 음식이나 좋아하는 음식을 포함해서, 나에 대한 이야기를 드러내고 한 적이 없어서 엄마는 몰랐을 것이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가장 힘든 일 역시 나를 드러내는 일이었다. 사실은 진짜 내 모습을 드러내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으면서, 여전히 내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 시도할 때마다 살갗을 벗겨내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져, 결국 얼른 두루뭉술한 문장 뒤에 숨곤 한다.  


엄마가 차려준 밥상 앞에서 용기를 내어 말했다. 미역국과 잡채를 싫어한다고. 

엄마는 나보다 더 놀란 것 같았다. 괜히 미안했지만 이야기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하는 딸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음식조차 끝내 모르고 살아가게 된다면, 그거야말로 엄마에게 더 큰 슬픔이 되지 않을까. 


이제 겨우 새끼손톱만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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