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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Sep 03. 2020

현관 앞, 잠시 멈추고 질문을 던지는 곳

삶에도 멈춤의 시간이 필요하다

현관 앞은 내가 종종 깜짝 놀라 무릎을 치는 곳이다. 외출하려는 순간 깜빡 잊은 뭔가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전등이나 가스 불을 끄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을 때도 있고, 지갑이나 열쇠 등 중요한 걸 챙기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안도의 한숨을 쉬며 얼른 수습을 하고 현관문을 나선다. 


오히려 현관 앞에서 전혀 놀라지 않고 집을 나섰다 낭패를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모든 걸 완벽하게 챙겨 길을 나섰다고 생각했는데, 엘리베이터를 타려다 뭔가를 빠뜨리고 왔다는 걸 깨닫는다. 심지어 한참 길을 가다 생각나기도 한다. 그러면 스스로의 부주의함을 투덜대며 집으로 돌아간다. 그래도 이렇게 수습할 수 있을 정도면 괜찮다.  


현관 앞에서 기절할 듯 놀란 적도 있다. 몇 시간 외출했다 돌아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탄내가 코를 찔렀다. 깜짝 놀라 주방으로 달려가 보니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은 냄비가 까맣게 탔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내용물을 알아볼 수 없게 타버린 냄비를 버리고 환기를 시키지만, 집안에 밴 탄내는 금세 빠지지 않는다. 불이 났으면 어쩔 뻔했는가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젊었을 때도 덜렁대는 축에 속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점점 깜빡하고 잊는 일이 잦아진다. 외출할 때마다 놀라지 않기 위해 현관 앞에서 잠시 멈추는 시간을 갖기 시작했다. 잠시 가만히 서서 생각해 보는 것이다. 필요한 걸 모두 챙겼는지, 전기나 가스 등은 모두 껐는지, 기타 잊어버린 건 없는지. 


한동안 깜짝 놀람의 공간이었던 현관 앞이 이제는 잠시 멈추어 돌아보는 공간이 되었다. 어디로 가려는지, 무엇 때문에 나가는지, 잊은 건 없는지 생각하는 시간을 잠시 갖는 곳. 짧지만 그 멈춤의 시간이 일어날 뻔한 많은 실수와 위험을 줄여 준다.  


가끔은 삶에서도 그런 멈춤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잊고 있던 건 없는지, 원하는 곳으로 가고 있는지, 나답게 살고 있는지 점검해 보는 시간. 삶의 현관 앞에서 깜짝 놀라 당황하거나 무릎을 치며 후회하지 않기 위해, 잠시 멈추고 찬찬히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누구인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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