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 첼란 '코로나'
코로나
- 파울 첼란
가을이 내 손에서 이파리를 받아먹는다. 가을과 나는 친구.
우리는 시간을 호두에서 까 내어 걸음마를 가르친다.
시간은 껍질 속으로 되돌아가기에.
거울 속은 일요일이고,
꿈속에서는 잠을 자고,
입은 진실을 이야기한다.
내 눈은 연인의 음부로 내려간다.
우리는 서로 바라본다,
우리는 서로 어두운 것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서로 양귀비와 기억처럼 사랑한다,
우리는 잠을 잔다, 조개에 담긴 포도주처럼,
달의 핏빛 빛줄기에 잠긴 바다처럼.
우리는 껴안은 채 창가에 서 있고, 사람들이 길에서 우리를 본다.
알아야 할 때가 되었다!
때가 되었다, 돌이 꽃피어 줄 때,
그침 없는 불안으로 가슴이 뛸 때가.
때가 되었다, 때가 될 때가.
때가 되었다.
코로나 시대에 살다 보니 ‘코로나’에 ‘코로나 19’라는 바이러스 이름 외에 다른 뜻이 있다는 사실마저 완전히 잊고 말았다. 파울 첼란의 어둡고 고통스러운 시들을 읽고 있던 중 갑자기 ‘코로나’라는 시 제목이 나오자 깜짝 놀라 빠른 속도로 시를 훑었다. 50년 전에 죽은 시인의 입에서 ‘코로나’라는 말이 흘러나오는 게 기이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코로나 19 때문에 ‘코로나’라는 이름의 맥주가 외면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농담처럼 흘려 들었던 적이 있다. ‘코로나’는 이렇게 맥주 이름이기도 하고, 태양 대기 가장 바깥층에 있는 엷은 가스층을 말하기도 하고, 개기 일식 때 달 주위로 번지는 광환(光環)을 말하기도 한다.
이 시에서 코로나는 개기일식 때, 태양이 완전히 가려진 그 주위로 번져 나오는 빛의 환(環)을 말한다. 이 시는 한순간 태양 빛이 꺼지듯 시간의 어두운 원점에 선 연인들의 모습을 그린 사랑의 노래인 것이다. 어떤 이를 사랑했기에, 태양 빛이 모두 꺼지듯 깊은 어둠의 원점에 서게 되었을까.
“어쩌면 말해도 되겠지요, 한 편 한 편의 시에는 그것의 ‘정월 스무날’이 적혀 있다고. 어쩌면 오늘날 쓰이는 시들에서 새로운 점은 바로 이것 아닐까요. 여기서 가장 뚜렷하게, 그런 날짜들을 기억하고 있으며, 기억하려 한다는 것요?”
파울 첼란 <자오선> - 게오르크 뷔히너 상 수상 연설 중
첼란이 남긴 시들에는 모두 ‘정월 스무날’의 화인(火印)인이 찍혀 있다. ‘정월 스무날’, 1월 20일이 어떤 날이기에 그의 모든 시에 불도장을 찍은 것일까.
1942년 1월 20일은 나치가 유태인을 무차별 학살하기로 최종 결정한 날이다.
1948년 1월 20일은 파울 첼란이 잉게보르크 바흐만을 처음 만난 날이다.
파울 첼란은 유대인으로 유대인 수용소에서 아주 우연히 살아남았지만 부모는 죽임을 당했다. 첼란이 처음 수용당했을 때 18명이 들어갈 막사 3 개에 1800명의 유대인을 수용했다고 한다. 끔찍한 죽음의 현장을 날마다 목도한 그가 혈족을 죽인 살인자들의 언어인 독일어로 시를 쓰고, 나치 핵심 장교의 딸인 잉게보르크 바흐만을 사랑했으니… 살아남았다 해도 그가 평생 느꼈을 고통과 혼란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다.
첼란과 바흐만은 서로를 사랑했지만 당연히 그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런가 하면 끊어질 수도 없었다. 수십 년 간 두 사람은 멀리서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작품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그 사랑을 이어갔다.
1970년 파울 첼란이 센 강에서 투신자살한 후, 바흐만은 1971년에 출간한 <말리나>를 통해 “내 삶은 끝났다. 그가 강물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내 삶이었다. 나는 그를 내 목숨보다 더 사랑했다.”라고 했다. 그 후 바흐만은 호텔방에서 수면제에 취한 채 담배를 피우다 생긴 화재로 화상을 입고, 화상 후유증으로 사망한다.
‘코로나 19’와는 전혀 관계없는 ‘코로나’를 제목으로 하는 시.
하지만 시에 흐르는 정서는 오히려 비슷하다는 생각도 든다.
무차별적으로 공격해 개인의 삶을 파괴하는 건 ‘코로나 19’나 전쟁의 광기나 마찬가지일 테니.
“그가 유대인이고, 그의 언어가 독일어라 할지라도,
시인이 시 쓰기를 포기하는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 펠스티너
코로나 19가 도무지 언제 사라질지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가 삶의 여러 영역을 무참히 무너뜨리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던 일,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이어나가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