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징시루(南京西路) 근처 롱탕(弄堂)
사평역(沙平驛)에서*
-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히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 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 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사평역에서,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1981>)
어느 따분한 날 오후, 회중시계를 들고 말을 하며 허둥지둥 달려가는 흰 토끼를 발견하고 토끼를 쫓아간다.
사람과 차들이 쏟아지는 도심 한복판. '서울의 명동'에 해당하는 상하이의 난징시루 한가운데 위치한 롱탕(弄堂). 흰 토끼를 따라 굴 속으로 들어가는 앨리스가 되어, 세상 한복판에 난 미세한 틈을 따라 존재하는 롱탕의 좁은 골목으로 발을 들여놓는다.
1870년 후 조계 지역에 마구 지어진 목제 건축물들이 화재에 취약해 집중단속을 받게 되자, 새로운 건축양식인 쓰쿠먼(石库门) 양식의 건물들이 지어지기 시작했다. 쓰쿠먼은 중국 전통의 목조 구조에 벽돌로 벽을 올린 형태로, 대문의 둘레를 돌로 만들고 문짝은 두꺼운 목재를 이용해 달되 보통 검은 옻칠을 하고 거기에 구리로 만든 문고리를 다는 게 일반적이다. 전통주택 같은 화려함이나 다양함은 없지만, 오히려 도시 생활에는 적합하다. 대문 밖은 바로 도심이지만, 문 안은 비록 좁더라도 외부에 철저히 봉쇄된 별도의 독립된 공간을 잘 재현해 놓았다.
쓰쿠먼 주택들은 개개 주택의 벽을 붙여서 가로로 죽 늘여놓고, 이렇게 배치된 주택 군락을 서로 마주 보게 해 그 중간에는 사람이나 짐이 다닐 수 있도록 좁은 통로를 두었는데, 이것이 바로 롱탕(弄堂)이다.
롱탕의 진입도로 입구에 알록달록 무늬에 노랑, 빨강, 색색의 파자마를 위아래 한 벌로 주욱 빼 입은 여자 셋이 한창 수다를 떨고 있다. 국제도시 한복판에서, 그것도 대낮에 파자마 패션이라니. '이상한 나라'에 들어서자마자 앨리스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2006년 상하이 사회과학원과 여성연합회가 공동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상하이 시민 16%가 '평소에 파자마 차림으로 공공장소를 돌아다닌다'라고 답했고, 25%는 '가끔 그런다'라고 답했다. 화려하고 부유한 도심 한 복판에서 파자마를 입고 다닐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들에게는 '부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지도.
롱탕 입구는 도로를 향해 절대 열릴 것 같지 않은 거대한 성처럼 두껍고 견고한 담장을 쌓고 있다. 물론 두꺼운 담장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담장이 아닌 건물의 벽이다. 따라서 철저한 '폐쇄성'으로 내부에 살고 있을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주겠지만, 그곳도 역시 소통을 원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 외부를 향해 뚫려있는 창문을 통해 그들이 원하는 건 철저한 '폐쇄'나 '봉쇄'가 아님을 슬며시 드러낸다.
두세 사람이 넉넉히 걸을 수 있는 넓이의 롱탕을 따라 걸어 들어가니, 다시 갈라진 샛길이 나오고 이 샛길은 점점 더 좁아지고 은밀해지며, 벽은 점점 더 높아져 외부인을 철저히 방어하고 소외시킨다. 롱탕의 좁은 샛길은 마침내 각자의 사적인 공간인 주택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쓰쿠먼 앞으로 안내하지만, 쓰쿠먼은 이방인인 내 앞에 견고하게 닫힌 채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굳게 닫혀있는 쓰쿠먼을 뒤로하며 좁은 샛길을 다시 쓸쓸히 걷는다. 바쁘게 달려가던 흰 토끼는 온데간데없고 홀로 길을 잃었다. 좁디좁은 롱탕의 샛길에서 고개를 드니 손을 흔들어 나를 반기는 이들이 눈에 띈다. 창마다 밖을 향해 길게 뻗어 나온, 외벽에 달아놓은 장대들. 장대 위에 대롱대롱 매달려 한 줄기 빛을, 한 움큼의 바람을 갈망하는 빨래들.
화려하게 수놓은 붉은 레이스 브래지어와 이제 막 피어난 젖 몽우리를 감쌌을 앙증맞은 크기의 브래지어.
나라면 벌써 버렸을, 목이 다 늘어나고 누렇게 색이 바랜, 한 때는 하얀색이었을 티셔츠와 구멍 난 양말.
펑퍼짐한 허연 엉덩이가 자동으로 연상되는 고무줄이 늘어나 헤벌어진 속곳.
여기저기 얼룩진 침대보와 알록달록 다양한 무늬의 이불들.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져 고개를 돌린다.
3월의 토끼가 앨리스에게 진심으로 권했다.
"차 좀 더 마셔."
앨리스는 기분이 상해서 대답했다.
"난 아직 아무것도 못 마셨어요. 그러니 '더' 마신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모자 장수가 중얼거렸다.
"아무것도 안 마셨을 때 '더' 마신다는 것은 말이 되지. '덜' 마시는 것이 말이 안 되지."
루이스 캐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중
쓰쿠먼의 빗장을 단단히 걸어 잠근 채 이방인인 나를 철저히 소외시키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이방인인 나마저 그들의 일상에 초대하고 숨기고 싶을 모든 것을 고스란히 드러내어 보여 주고 있었다. 그런데 '숨기고 싶다'는 건 누구의 기준이고 생각일까.
숨기고 싶은 어두운 과거의 한 자락.
내 것이라 말하고 싶지 않은 욕망과 갈망의 한 조각.
드러내면 안 된다고, 숨겨야 한다고, 부끄러운 것이라고 속삭이는 목소리는 누구의 것인가?
아무것도 안 마셨을 때 '더' 마신다는 건 정말 말이 안 되는 걸까?
도시 외관상의 이유로 미국에는 '빨랫줄 사용 금지 조례'가 채택된 주가 많다. 볕 좋은 날 그저 빨래를 마당에, 그리고 베란다에 널려다가 고소를 당하거나 총에 맞아 죽을 뻔한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한국도 아파트 시세가 떨어질까 두려워 서로의 눈치를 보며, 빨래를 햇볕에 널어 말리지 못하고, 점점 더 구석으로, 구석으로 밀어 넣어 숨기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가치에 대한 기준은 끊임없이 변한다. <빨래 말릴 자유(Drying for Freedom)>라는 영화가 만들어질 정도로, 보이는 곳에서 빨래를 말리는 것에 가장 반대하던 미국에서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메인, 버몬트, 유타, 플로리다 등 몇 개 주에서 집 밖에 빨래를 널 수 있게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골목마다, 창마다, 시내 한 복판 횡단보도 옆에 가로 매어 놓은 빨랫줄에
대롱대롱 매달린 빨래들.
볕을 잘 쪼여 태양 빛을 머금고 상큼한 바람의 향이 배어 있는 빨래들.
살랑살랑 바람에 흔들리는 빨래들이 내게 말을 건다. 꽁꽁 숨겨 놓고 한 번도 꺼내지 않은 것들을 이렇게 볕 좋은 날 기다린 장대에 대롱대롱 매달아 잘 말려보라고.
어두운 구석방에 숨어 울며 눈물로 축축해진 마음속 빨래들을 빛 가운데 꺼내어 바짝 말리고, 솔솔 불어오는 바람을 통과시켜 보라고.
난징시루(南京西路)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상하이 대표 거리 중 하나. 세련되고 현대적인 호텔과 명품 숍들이 늘어서 있고 교통이 편리해 쇼핑과 식도락의 번화가이며, 와이탄(外滩), 런민공위엔(人民公园), 런민광창(人民广场), 상하이 미술관(上海美术馆) 등 여행 명소가 멀지 않아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롱탕(弄堂)
상하이 개항 이후 발전하기 시작한 상하이 주민의 주거 방식으로, ‘골목’ ‘좁은 거리’라는 뜻이다. 아편 전쟁 이후 조계지 제도에 따른 중서 문화가 서로 융합되고 교차된 산물이라 할 수 있다. 롱탕은 길을 따라 옆쪽으로 늘어서 있으며, 밖을 향해 열려 있는 개방형 문화를 잘 보여준다.
쓰쿠먼(石库门)
쓰쿠먼 양식은 1990년대 상하이 일대에서 유행한 건축 양식. 문들을 벽돌로 만들었다는 의미에서 쓰쿠먼 양식이라고 한다. 중국 전통의 검은 문과 유럽 양식이 결합되어 탄생. 상하이 시가 프로젝트를 통해 쓰쿠먼 양식을 복원해 신티엔띠(新天地)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