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기억하다: 아무것도 안 가졌을 때 행복했습니다

짱쟈방촹이지에 (张家浜创意街)

by 윤소희


2 기억하다: 아무것도 안 가졌을 때 행복했습니다

@ 짱쟈방촹이지에 (张家浜创意街)



너를 사랑한다




- 강은교






그땐 몰랐다.

빈 의자는 누굴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의자의 이마가 저렇게 반들반들해진 것을 보게

의자의 다리가 저렇게 흠집 많아진 것을 보게

그땐 그걸 몰랐다

신발들이 저 길을 완성한다는 것을

저 신발의 속가슴을 보게

거무뎅뎅한 그림자 하나 이때껏 거기 쭈그리고 앉아

빛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게

그땐 몰랐다

사과의 뺨이 저렇게 빨간 것은

바람의 허벅지를 만졌기 때문이라는 것을

꽃 속에 꽃이 있는 줄을 몰랐다

일몰의 새떼들, 일출의 목덜미를 핥고 있는 줄을

몰랐다.

꽃 밖에 꽃이 있는 줄 알았다

일출의 눈초리는 일몰의 눈초리를 흘기고 있는 줄 알았다


시계 속에 시간이 있는 줄 알았다

희망 속에 희망이 있는 줄 알았다

아, 그때는 그걸 몰랐다

희망은 절망의 희망인 것을.

절망의 방에서 나간 희망의 어깻살은

한없이 통통하다는 것을.


너를 사랑한다.




드디어 한 달 전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개성 있는 카페가 문을 열었다. 푸시(浦西)에는 두세 집 걸러 하나가 카페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푸동(浦东)에는 기껏해야 스타벅스나 커피빈 같이 정형화된 공간들 뿐이라 답답하던 참이었다. 새로 생긴 카페는 동남아 지역 풍의 그림과 조각품들이 진열되어 있어 스타벅스나 커피빈에 식상해있던 내게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단점이라면 오전 10시나 되어야 문을 연다는 것. 나 같은 아침형 인간에게는 달갑지 않다. 어쨌거나 일부러 시간을 맞추기 위해 느지막이 노트북을 챙겨 들고, 그 카페를 찾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카페는 문이 굳게 닫혀 있고, 넓은 창마다 하얀 휘장이 둘러쳐져 있다. 업종을 바꾸기 위해 내부공사 중인 모양이다. 정말 푸동 인들은 카페가 필요 없는 건가? 간만에 생긴 카페 문을 금세 닫게 만들다니.


결국 ‘강변 카페’라고 부르며 위안을 삼는 ‘장쟈방촹이지에'에 있는 스타벅스로 향했다. 짱쟈방허(张家滨河)는 서쪽 황푸강(黄浦江)에서 시작해 동쪽 양쯔강(长江) 입구에서 끝나는 작은 하천이다. 중국 정부가 디자인, 건축, 패션, 광고 등 13개 분야 산업을 ‘창의 산업’으로 지정하고 전폭적인 지원을 하기로 결정한 후, 상하이 안에도 수십(?) 개의 디자인 클러스터가 생겨났다. 규모는 작지만 그중 하나로 짱자방 하천을 따라 800미터 정도의 길을 ‘창의 거리’로 정하자, 그 길에 하나하나 모양이 다른 창문에 특이한 모양의 입방체 건물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작은 공예품이나 미술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갤러리 형 숍들이 눈에 띄었으나, 점점 레스토랑과 카페들에 밀려나고 있다. 나 역시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거나, 다양한 일식 요릿집에 들러 일본 음식을 먹을 때 그곳을 찾는다.


짱자방.jpg 짱쟈방촹이지에 (张家浜创意街)


날씨가 따뜻할 때는 바깥에 놓여 있는 테이블에 앉아 흐르는 물을 바라보고, 그 곁에 심긴 버드나무의 나뭇가지들을 살랑살랑 움직이는 바람을 보기도 했는데, 날이 추워진 지금 2층 창가 자리에 앉았다. 일본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라 그런지 한 떼의 젊은 일본 여자들이 한바탕 수다를 떨다 나갔다. 조그만 창으로 흐르는 물을 바라본다.


언젠가는 짱자방허를 건너는 작은 다리 위에서 한 중국인 청년이 이태리어로 된 가곡을 멋들어지게 부르는 것을 본 적 있다. 성량으로 볼 때, 성악을 전공한 듯했다. 어쩐지 머리가 까맣고 키가 자그마한, 그다지 세련되어 보이지 않는 외모에서 흘러나오는 이태리어 가곡이 낯설어 잠시 웃음이 나기도 했지만, 낯설기 때문에 신선했다. 지나다니는 수많은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아름다운 자연을 보며 자신의 목소리로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청년이 부럽기도 했다. 가끔 정장을 차려 입고 점잔 빼며 음악회에 다녀오는 것에 만족하는 이들보다 그 청년이야말로 문화를 즐길 줄 아는 진정한 ‘문화인’이 아닐까?


'수심 4미터 수영하지 마시오'란 팻말과 예용하는 사람


흐르는 하천을 따라 유유히 떠가는 사람의 머리가 보인다. 하나가 아니다. 이곳에 올 때마다 거의 항상 보게 되는 풍경인데도 아직 익숙해지지 않는다. 짱쟈방 하천을 유유히 헤엄치는 사람들. 무더운 여름철뿐 아니라 쌀쌀한 바람에 점퍼 속에 목을 움츠려 숨기게 되는 이른 봄이나 늦은 가을에도 하천에서 헤엄을 치는 이들을 발견할 수 있다. 내가 느끼는 놀라움은 ‘아, 춥지 않을까?’ 보다는 주로 ‘아, 저 물 더러울 텐데 괜찮을까?’에 가깝다. 처음 한두 명 발견했을 때는 ‘참 이상한 사람도 다 있다.’ 했었는데, 갈 때마다 보게 되자 무엇이 그들을 끌어당기는지 호기심이 일었다. 젊은 남자들만 있는 게 아니라, 때로는 노인을, 아이들을, 심지어 여자들도 발견하게 되자 호기심이 더 커졌다.


탈의실이나 샤워실을 갖춘 수영장이 아닌 이 곳에서 수영을 하기 위해 그들은 어떻게 옷을 갈아입는 걸까? 한 번은 그 현장을 목격할 수 있었다. 3,40대로 보이는 여자가 수영을 하다 밖으로 나오더니, 마치 훌라후프에 샤워 커튼을 둘러놓은 것 같은 ‘이동식 탈의실’로 쏙 들어가 얼굴만 내놓더니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그곳에서 그대로 옷을 갈아입는 것이었다. 직접 현장을 목격하진 못했지만, 남자들은 그나마 그런 ‘이동식 탈의실’도 준비하지 않는다고 하니, 하늘이 탈의실 천장이고, 바람이 탈의실 벽일 것이다.


하천에서 이렇게 헤엄치는 것을 예용(野泳)이라 부른다. ‘야외 수영’ 쯤으로 해석하면 될까? 지난 십여 년 사이 이 곳에서 예용을 하다 사망한 사람이 이미 30명을 넘어섰다. 하천을 따라 곳곳에 ‘수심이 4미터가 넘으니 수영 금지’란 팻말을 여럿 세워놓았지만 소용없다.


“우리들 여기 와서 수영한 지 십 년 넘었어요. 매년 오지요. 우린 수영장에 못 가요. 그런 데서 사람이 어떻게 수영을 해요? 우린 예용(野泳)이 좋아요. 여기가 편해요. 이거 양쯔강 물이 잖아요. 이 물이 수영장 물보다 깨끗해요.”


“이 근처 공장에서 시간제로 일하고 있어요. 일 끝나면 바로 이리로 달려오죠. 이게 목욕하는 것보다 훨씬 시원하고 좋아요.”


“우리 고향에서는 다 이렇게 강에서 헤엄쳐요. 뭐가 무서워요?”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무섭지 않냐, 물이 더러울 텐데 괜찮냐고 물어봐도 그들의 대답은 한결같다.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인위적인 수영장의 물보다 자연이 주는 이 물이 더 깨끗하고, 좁은 샤워실에서 샤워하는 것보다 하천에 벗고 뛰어드는 게 더 시원하고 상쾌하다고. 정말 이상한 건 어쩌면 그들을 이상하다고 여기는 우리들, 나 자신이 아닐까? 흐르는 물을 바라보며 노트북을 켜 놓고 커피를 홀짝이는 나보다, 옷을 벗어던지고 시원한 물속으로 첨벙 뛰어드는 사람들이 훨씬 자연스러운 건 아닌지.


“기억하십니까? 아무것도 안 가졌을 때 우린 행복했어요. 내 물건이 뭐고, 돈이 뭡니까? 그것들은 오히려 늘 행복이 부족하다고 느끼게 했지요. 우리 아마조니 족은 자연 속에서…… 아무것도 안 가졌을 때 행복했습니다.”
-MBC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 중


어쩌면 너무 많이 가지고 있는 건지 모른다. 해야 할, 또는 하지 말아야 할 제약들도 많고.


스타벅스나 커피빈 같이 정형화된 공간들이 싫다고 주인의 개성이 드러나는 카페를 찾고 있던 나 자신이 부끄럽다. 틀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는 듯, 예술을 아는 듯, 삶을 즐기는 듯, 홀로 착각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저 또 다른 정형화된 공간을 찾고 있었을 뿐이고, 또 다른 틀을 찾아 그 안에서 안전을 누리고자 했을 뿐이면서. 벗고 헤엄치는 저들 앞에 옷을 잔뜩 껴입은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다.


“그래도, 당신은 나를 그 잘난 머리로 이해합니다. (…) 당신이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나는 당신 팔과 가슴을 봅니다. 팔과 가슴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침묵한다 이겁니다. 한 마디도 하지 않아요. 흡사 피 한 방울 흐르지 않는 것 같다 이겁니다. 그래, 무엇으로 이해한다는 건가요, 머리요? 웃기지 맙시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중


이성적인 남편이 충분히 공감해 주지 않는다고 느낄 때 종종 인용하던 구절이다. 지금 이 순간, 조르바가 던진 이 말이 내 가슴을 날카롭게 찢는다. 그의 눈빛이 내 팔과 가슴을 뚫어지게 보고 있는 것만 같다. 꼼짝을 않고 침묵하고 있는 내 팔과 가슴. 자연은 바로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내게 말을 걸고 있다. 시시각각 색깔이 변하는 하늘이, 밀도가 달라지는 공기가, 흔들리는 나뭇가지의 소리가, 잠시 앉았다 무언가를 콕콕 찧다 날아가는 까만 새가, 흐르는 물결의 출렁임이…. 하지만 난 눈을 닫고, 귀를 닫고, 코를 닫고 있다. 글이 잘 써지지 않는 건 푸동에 개성 있는 카페가 없어서가 아니라, 자연이, 그리고 일상이 끊임없이 내게 속삭이는 소리를 내가 듣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팔과 가슴을 꽁꽁 묶어 놓고, 피 한 방울 흐르지 않는 밀랍 인형처럼 피부마저 닫고 어떻게 글을 쓸 수 있겠는가?


자, 저 흐르는 물에 한 번 뛰어들어 볼까?


아 참, 난 수영을 못하지. 다행이다. 어차피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할만한 용기가 내게 없으니. 조그만 창문 너머로 보이는 머리를, 흐르는 물을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머리를 바라본다. 내 팔과 가슴이 잠시 꿈틀 한다.




상하이 여행 팁:


짱쟈방촹이지에(张家浜创意街)


상하이 푸동신구에 위치한 창의산업구역. 푸동에서는 처음 시도됨. 짱쟈방 천(张家滨河)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 주변 건축물들은 2층 높이를 넘지 않으며, 저마다 불규칙하고 독특한 건축 양식을 보여준다. 관광, 쇼핑, 미식, 예술전시관람, 미용 등 다양한 니즈를 충족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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