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주치다: 익숙하지 않은

치바오라오지에(上海七宝老街)

by 윤소희

치바오라오지에

Intro:


이 책의 저자, 이솔은 20대에 잠시 연극배우로 활동했으나, 지금은 상하이에 거주하고 있는 30대 중반의 7년 차 전업 주부다. 하지만 당신은 이솔을 이 글을 떠나서는 만날 수 없다. 그녀는 소설 속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문장 안에서 사랑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한 소설은 20개의 동사로 문을 열고, 그 동사가 마법처럼 골라 준 20편의 시를 매개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 글은 현실과 허구 사이, 그 아슬아슬한 경계 위에서 줄타기를 하며 이솔이 상하이 구석구석을 다니며 쓴 여행기다. 픽션 여행기.


당신도 이솔과 함께 상하이 구석구석을 누비며

문장과 현실의, 상상과 사실의 그 아슬아슬한 경계를 넘나들 수 있기를.




1 마주치다: 익숙하지 않은

@치바오라오지에(上海七宝老街)





-파블로 네루다 (정현종 옮김)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 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아냐,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어,

하여간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더군,

밤의 가지에서,

갑자기 다른 것들로부터,

격렬한 불 속에서 불렀어,

또는 혼자 돌아오는데 말야

그렇게 얼굴 없이 있는 나를

그건 건드리더군.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어, 내 입은

이름들을 도무지

대지 못했고,

눈은 멀었으며,

내 영혼 속에서 뭔가 시작되고 있었어,

热이나 잃어버린 날개,

또는 내 나름대로 해보았어,

그 불을

해독하며,

나는 어렴풋한 첫 줄을 썼어

어렴풋한, 뭔지 모를, 순전한

넌센스,

아무것도 모르는 어떤 사람의

순수한 지혜,

그리고 문득 나는 보았어

풀리고

열린

하늘을,

游星들을,

고동치는 논밭

구멍 뚫린 그림자,

화살과 불과 꽃들로

들쑤셔진 그림자,

휘감아도는 밤, 우주를


그리고 나, 이 微小한 존재는

그 큰 별들 총총한

虚空에 취해

신비의

모습에 취해,

나 자신이 그 심연의

일부임을 느꼈고,

별들과 더불어 굴렀으며,

내 심장은 바람에 풀렸어.




눈물조차 다 말라버려 온몸이 버석거리고 가슴속에서는 모래 먼지가 풀풀 날린다. 영혼과 온몸의 물기를 모두 비틀어 짜낸 지금, 내 가슴은 아프리카 사막을 닮았다. 고양이처럼 물을 싫어하는 내가 물 대신 술과 커피를 마시며 온몸의 물기를 바짝 말린 탓이다. 버석버석하는 드라이플라워가 된 내가 문득 물기를 찾아 발걸음을 옮긴다. 물이라니… 익숙하지 않다.


오래된 건축물 사이로 물이 흐른다. 물길을 건너기 위해 무지개처럼 세워진 작은 다리와 물길 위에 떠 있는 낡은 나룻배들. 빌딩 숲 사이에 슬쩍 끼어있는 천여 년 전 과거의 풍경. 명, 청대뿐 아니라 송나라 때의 건축물과 역사의 그림자를 볼 수 있는 곳. 낯설다.


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 인지*.


이물감에 눈을 깜박거려 보고, 억지로 헛기침을 해 본다. 어느 날 문득 내 삶 속으로 시(詩) 그리고 문장이 들어왔다. 내 공간에 불쑥 끼어든 침입자처럼, 눈꺼풀 속으로 슬쩍 끼어든 이물질처럼.


시를 통해 입속으로 들어온 단어들이 주는 그 생경한 맛과 질감 때문인지 문득, 물기를 찾고 싶었다. 물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생명과 생산, 정화와 치유라는 익숙지 않은 어휘들을 혀끝에서 굴리며 물기에 이끌렸다. '동양의 베니스’로 불린다는 강남수향 6대 고진(江南水乡六大古镇)인 쪼우좡(周庄), 루즈(甪直), 통리(同里), 시탕(西塘), 우쩐(乌镇), 난쉰(南浔) 중 하나를 가볼까 했으나 마음이 급했다. 며칠을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갈급한 사슴처럼 물기를 찾느라 허둥대던 내 걸음은 어느 새 치바오라오지에(七宝老街)에 닿았다.


치바오.png 치바오라오지에(上海七宝老街)_이미지 출처: 네이버


좁은 골목에선 여러 가지 낯선 냄새가 났고, 오가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옷가지와 작고 낡은 기념품들을 파는 가게들을 지나 간단한 먹을거리인 샤오츠(小吃) 가게들이 양쪽으로 즐비하다. 신장지역 음식인 양꼬치(羊肉串)에 듬뿍 뿌린 즈란(孜然)의 독특한 향이 코를 찌른다. 양고기 외에도 돼지 꼬리와 돼지 코, 닭똥집과 문어다리, 메뚜기 등 꽂을 수 있는 건 모두 꽂아 파는 듯한 꼬치 가게도 보인다. 한창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끌었던 회오리감자를 비롯해 각종 튀김을 파는 가게와 다진 파와 밀가루 반죽을 섞어 튀긴 총요우빙(葱油饼)과 지엔빙(煎饼), 달지 않은 길쭉한 도넛 요우탸오(油条) 등에서 기름 냄새가 진동한다. 찻잎과 대회향씨, 간장, 소금, 설탕 등을 넣고 삶아낸 갈색 계란 차딴(茶蛋)과 부화 중인 각종 알들을 구워 팔기도 하고, 발톱까지 그대로 튀긴 닭이나 통오리구이도 있다. 우리나라 붕어빵과 비슷한 해당화빵(海棠糕)이나 딴타(蛋挞:에그타르트), 과일에 설탕시럽을 발라 얼린 빙탕후루(冰糖葫芦) 등 달콤한 샤오츠라도 하나 사볼까 했으나 곁에서 나는 초우또우푸(臭豆腐) 냄새가 서둘러 그곳을 뜨게 했다. 팔다 남은 두부가 상해 곰팡이가 슨 걸 소금물에 절여 다시 판 것이 시초였다는 초우또우푸는 소금에 절인 두부를 발효시켜 튀긴 음식이다. 냄새는 역겨워도 먹으면 시큼하고 칼칼한 그 맛을 잊을 수 없다는 초우또우푸. 어떤 치즈보다 블루치즈를 즐겨먹는 나지만 초우또우푸 냄새만은 어쩐지 익숙해질 수가 없다.


치바오3.jpg 초우또우푸(臭豆腐)_이미지 출처: 네이버


흙빛 물이 물길 따라 유유히 흘러간다. 끝이 날렵하게 올라간 검은 지붕의 정자와 회색빛의 오래된 건축물. 한때 운하를 따라 발달하며 번영을 누렸을 수향 마을 중 하나인 치바오라오지에는 언제 그런 적 있었냐는 듯 화려한 데 없이 그저 소박하고 조금은 어둡다. 낡은 나룻배 하나가 흔들거린다. 그 위에 타고 있는 앞니 빠진 노인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든다. 어서 와서 배를 타라는 듯. 잠시 망설였으나 노인의 손짓을 외면하고 돌아섰다. 가슴을 열고 던져 모든 걸 쏟아놓으라니, 익숙하지 않다.


내 심장은 바람에 풀렸어*.


시를 쓰며 불어오는 바람에 심장을 풀어놓는 시인을 멍하니 바라본다. 내 심장은 바람에 풀리지… 않았다. 문을 활짝 열어 놓고, 누군가를 내 안에 들이는 일에는 서투르다. 어쩐지 절대 익숙해질 수 없다. 그렇게 슬쩍 문을 열고 들어와 버리면, 나는 안절부절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댄다. 눈길조차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르게 되어 버리는 것이다.


치바오2.jpg 치바오라오지에(上海七宝老街)_이미지 출처:우먼센스


다리로라도 물길을 건너 저편으로 가볼까 했는데, 지금쯤 멋쩍게 손을 내렸을 노인에게 다시 눈길을 돌릴 수 없어, 애써 물길 쪽을 외면한 채 좁은 골목을 걷는다. 이미 내게 무심해져 다른 누군가에게 손을 흔들고 있을 노인의 눈길이 어쩐지 내 뒤통수를 쫓고 있는 듯 느껴져 뒷목이 뜨끈해진다. 견디지 못한 나는 전시관 하나로 통하는 계단을 오르며 어둠 속에 묻힌다. 노인의 눈길로부터 도망친다.


치바오1.jpg 주씨미세조각관(周氏微雕馆)의 미세 조각작품들


2층에 있는 전시관은 날 또다시 낯선 세계로 인도했다. 주씨미세조각관(周氏微雕馆)은 주씨 부녀가 만든 미세조각작품을 전시해 놓은 곳이다. 릴리파트(소인국)에 다녀온 걸리버마저 깜짝 놀라 혀를 내두르지 않았을까? 불경 수천, 수만 자를 좁쌀 크기 안에 써넣을 수 있는 주씨 부녀는 키가 15센티미터 정도 된다는 릴리파트 인이 아닐까? 릴리파트 인들이 가지고 노는 인형들이나 사용할 법한 크기의 가구들, 꽃병과 찻잔 등 수천 점의 미세조각 작품들을 투박한 눈길로 쓱 스치듯 둘러보고는 얼른 그곳을 나왔다. 역시 섬세한 결들을 읽어내는 데는 서툰 데다 그만큼의 인내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피잉시(皮影戏:그림자극)에 사용되는 피잉 인형들을 전시한 곳과 귀뚜라미 초당 등 치바오라오지에의 전시관들을 하나하나 모두 둘러본다. 치바오라오지에는 천년 여의 시간을 고스란히 드러내어 보여주고 있건만, 여전히 보지 못하고 있다. 어둠 속에도 눈이 익숙해지면 형체들을 알아볼 수 있는 법인데. 어쩐지 내 눈은 빛에도, 어둠에도, 그림자에도 적응하지 못한 채,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보고 있으나 보이지 않는다.


치바오.jpg 피잉시(皮影戏:그림자극) 전시관에서 바라본 창문 그리고 빛


어느 날 문득, 시 한 줄이 불쑥 문을 열고 들어와 버렸다. 제멋대로 들어와 놓고는 나갈 마음이 없는지, 버석한 가슴에 물기를 더하라고, 꽁꽁 숨겨놓은 그것들을 문장으로 풀어내라고 자꾸만 내게 속삭인다. 그 목소리가 여전히 생경하고 익숙하지 않다. 낯설다. 서투르다. 그리고 빛에도 어둠에도 적응하지 못해 보이지 않는다.


내 심장은 아직 바람에 풀리지 않았어. 풀리지 않았어. 풀리지 않았어. 풀리지….. 풀리……풀……렸어.


눈을 꾹 감고 초우또우푸 한 점을 입에 넣는다.


(*파블로 네루다 ‘시’ 중)



상하이 여행 팁:


치바오라오지에 (上海七宝老街):


상하이와 가까워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곳에 위치한 수향 마을. 송나라 시대의 건축물과 당시 시장 모습 그대로의 작은 마을을 볼 수 있다. 입구를 지나면 쇼핑거리가 나오는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중국 전통 먹을거리다.


초우또우푸(臭豆腐)


두부를 소금에 절여 발효시킨 뒤 튀겨낸다. 흰색의 매운 두부로 만든 것과 회색의 말린 두부로 만든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지독한 냄새로 처음 시도해 보기는 힘들지만,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한다고 ‘지옥의 향기’라 불린다.


피잉시(皮影戏)


중국의 그림자극. 가죽이나 종이로 만든 다채로운 그림자 인형으로 하는 연극의 한 형태. 연주와 노래에 맞춰 막대기로 인형을 조종하고 뒤에서 조명을 비추면 관객들은 화면에 각종 캐릭터들의 그림자가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림자극에 쓰이는 인형에는 12~24개 정도의 움직일 수 있는 관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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