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안공원(静安公园)
파선
-이재하
우리 헤어졌네
소금처럼 찝질한
한 웅큼 共有의 시간들을 버리고
한 마디씩
죽음의 언어들을 간직한 채
조용히 울먹이는 마을을 향해
돌아갔네
거품으로 부글대는 매립지로부터
우리의 아이들은 깡통을 흔들며 돌아오고
한 낮을 뒤척이던 바다엔
숨져가는 석양이 눈물로 꽃을 피웠네
흔들리네
세상의 모든 이름 가진 것들이 자꾸만 흔들거려
흔들리는 모든 것들이 모여 어둠을 이루듯이
그렇게 흔들려서 어두워가는 뿌리 없는 우리의 삶을 보았네
滿船의 꿈들은 무겁게 내려앉은
납빛 밤 안개 속으로 풀어져 가고
찐득하게 흐드러진 꽃무더기 모냥
서서히 불을 켜가는 木船들의 칸델라 불빛을
보았네
어둠에 잠긴 마을을 돌아
비린내 나는 바람이 돌아오고
날기에 지친 물새들이
그들의 飛行으로부터 내려오면
그러면 우리는
지저분한 술청에 앉아
소주에 눈물을 떨구고
해삼처럼 느글느글한 추억들을 씹으며
거기 가로놓인 어둠도
질근질근 씹고 싶었네
돌아가지 않는 입술로 불려지지 않는 流行歌를 부르며
우리들 짧은 인생도
씹고 씹을 수 있는 그런 통쾌함으로만
이루어지도록
기억하나
밤이면 거친 숨을 몰아쉬고
두 손 내저으며
아, 순간마다
고기비늘처럼 자디잘게 부서져 가던
내 희망의 흰 돛들,
습관처럼 허리를 떨며
절망으로 추락해 가면
내 좁은 어깨 아래 은빛으로 출렁이던
바다,
머리 풀어헤치고 척박한 땅을 밟으며
쉬임없이 고개짓하던
생을 떠난 자들의 슬픈 웃음과
우리 全 생애를 향해 몇겹으로 밀려오던
치솟은 파도들
이제 눈물도 마르고
더 잃어야 할 아무 것도 없으면서
또 다시 세우는 우리의 깃발
생애 깊숙이 드리운 녹슬은 닻과 부러진 몇 개의 노
한 잔에 한 잔을 더하여
우리 젖은 삶에 욕설이 채워지면
바람이 멈추고
끈끈한 꽃잎같이 떠 있던
칸델라들이 꺼져가면
빈 배로 돌아오는 목선들을 껴안고서
허기져 꿈틀대는
새벽바다를 보았네.
잠시 딴 세상에 와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호화로운 백화점과 호텔, 오피스 빌딩 숲 사이에 홀로 고즈넉한 초록빛 공원. 시끄러운 소음을 내며 쌩쌩 지나가는 차들이 배경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공원 안은 고요하고 평화롭다. '5성급 공원'이란 평이 무색하지 않게, 중국 강남 지역 정원의 특색이 잘 드러나도록 산의 형상과 물을 이용해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다. 나뭇잎 무성한 플라타너스 가로수며, 연초록빛 넓은 잔디밭, 기묘한 모양의 바위와 돌들, 작은 동굴, 이국적인 호숫가에는 그에 어울리는 이국적 음식을 제공하는 레스토랑까지.
이제 막 카페가 문을 열기 시작하고, 오피스 빌딩 안에서 사람들이 막 업무를 시작하고 있을 시간. 이른 아침이지만, 공원 안 벤치는 이미 만원이다. 산책길을 따라 죽 놓여 있는 벤치에는 노인들이 삼삼오오 앉아 있고,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노인들이 벤치 주변에 서 있다.
모여서 대화하며 간혹 큰 소리를 웃기도 하는 노인들.
벤치에 앉아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바느질을 하는 할머니.
가져온 찻병을 들고 떠 있는 찻잎을 후후 불어가며 차를 마시는 노인들.
노인들의 표정은 지극히 온화하고 모습은 평온하다. 이른 아침부터 갈 곳도 할 일도 없어, 공원으로 밀려 나온 노인들의 마음은 정말 평온할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건 저 노인들 모두 불행하다는 답을 미리 가정하고 있는 건 아닐까. 초록빛으로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나뭇잎보다 가을바람에 바닥으로 떨어지는 낙엽을 더 아름답다고 느끼면서도, 인간의 노년만은 불쾌하고 추한 것으로 느끼고 있던 건 아니었는지. 서둘러 시선을 노인들에게서 돌려 바닥에 떨군다. 마지막까지 하루하루를 아름답게 살아가는 노인들 앞에, 청춘이 아니어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인정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서 있다.
아기를 안고 있거나, 손을 잡고 걸음마시키는 노인들이 눈에 띈다. 안고 있는 아이의 바지 가운데 드러난 통통하고 하얀 엉덩이. 찬바람 쌩쌩 부는 겨울 날씨에 새빨갛게 아이 엉덩이가 드러나는 '카이당쿠(开裆裤)'가 처음에는 몹시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간편하게 대소변을 해결하고, 덕분에 기저귀 값도 아낄 수 있어 아이에게 카이당쿠를 많이 입힌다.
이제 세상을 떠날 날이 멀지 않은 노인들과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아기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 어쩐지 어색하지 않다. 어쩌면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이가 아닐까. 삶과 세상에 대한 어떤 책임감도 의무감도 갖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삶을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는 가장 순수한 시기니까.
일고여덟 명씩 모여 줄을 맞춰 서서 태극권 수련을 하는 노인들.
춤을 추듯 두 팔을 벌려 위아래로 나비 날갯짓처럼 오르락내리락하며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 노인들.
경쾌한 음악을 틀어 놓고, 칼춤이나 부채춤을 추는 노인들.
남녀가 짝을 이뤄 우아하게 볼룸댄스를 추는 노인들.
몸을 열심히 움직이며 뜨겁게 정열을 뿜어내는 노인들은 '사는 것처럼 살다 죽겠다'는 강한 의지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것만 같다. 죽음을 앞에 가까이 두고 있는 그 순간에도 새롭게 사랑을 배우겠다고, 새롭게 모든 것을 흡수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노인들.
문득 노인들이 수도 없이 헤매는 서울의 한 풍경이 떠올랐다. 집에 편안히 있을 수 없어, 경로 우대증이 있으면 무료인 지하철을 타고 무작정 길을 나서, 창경궁과 종묘공원, 비원, 경복궁 등 고궁들을 계속 걷는, 앉아 있으면 먹을 것 생각나고 심사가 복잡해지니 허기를 잊기 위해 걷고 또 걷는 노인들. 가족과 국가가 버리고 내팽개친 가난한 노인들, '오래 사세요'란 의례적 인사말마저 민망한.
그래서였을까? 솔직히 공원에서 처음 마주친 노인들을 보며 난 그저 이 생각뿐이었다.
이 긴긴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까?
어쩌면……그건,
아프지도 가난하지도 않고, 근력과 체력이 다 하지도 않은 내가 나 자신과 내 삶에 던지고 있던 질문이었는지 모른다.
이 긴긴 삶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정안공원(静安公园)
상하이 징안쓰(静安寺) 맞은 편에 위치한 공원. 면적은 그리 넓지 않지만 상하이에서 가장 큰 침몰식 녹색 광장이 있고, 백 살에 달하는 프랑스 오동나무 산책길이 있다. 중국 고대 조경을 표현한 팔경원이 있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어 산책하기에 적당하고, 공원에서 한가로이 여가 시간을 즐기는 중국인들의 생생한 모습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