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 라오창팡(老场坊)
살인자의 술
- 보들레르
아내가 죽었어, 난 자유야!
그러니 실컷 마실 수 있지.
전엔 한푼 없이 돌아올 때면
그년 고함에 신경이 갈기갈기 찢겼지.
이제 난 왕처럼 행복하이.
공기는 맑고, 하늘도 희한한지고……
내가 년에게 반하게 된 것도
그래 이런 여름철이었지!
가슴을 찢는 이 지독한 갈증
그걸 풀려면 아마도
그년 무덤을 채울 만큼의
술이 필요할 걸. - 줄잡은 말이 아니지:
실은 년을 우물 속에 던졌거든
그리고 그 위에도 우물 변두리
돌들을 모조리 밀어넣기까지 했겄다.
- 잊을 수 있담 잊고 싶으이!
무엇으로도 우릴 떼어놓을 수 없는
우리 애정의 맹세를 위해서,
우리 사랑의 도취의 멋진 시절처럼
다시 화해하기 위해서,
난 그날 밤, 년에게 컴컴한
길가에서 만나자고 애원했것다.
년이 왔어! - 미친 것이!
다소간에 우리 모두가 미쳤거든!
무척 지친 꼴이었지만 년은
아직도 예쁘더군! 그리고 난 또
너무나 년을 사랑했지! 그래서
말한 거야 <이승에서 꺼져라!>고.
이 내 맘을 이해할 놈 아무도 없어.
이 머저리 주정뱅이들 중 단 한 놈이라도
병에 찌든 밤마다 술로 수의를 삼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던가?
쇠로 만든 기계인 양
불사신의 이 불한당은
여름이건 겨울이건 일찍이
참사랑을 안 적이 없어.
그 응큼하게 홀리는 마술이며,
아비규환의 다급한 불안의 연속,
그 독약의 병들이며, 그 눈물
그 쇠사슬과 해골 부딪는 소리나는 사랑을!
-이제 난 자유롭고 외톨이구나!
오늘 밤 난 죽도록 취하리라.
그땐 두려움도 회한도 없이
땅바닥 위에 벌떡 누울 테다.
그리곤 개처럼 잠들리라!
돌이며 진흙 따윌 실은
육중한 바퀴의 달구지건,
미친 듯 질주하는 화차건,
죄 많은 내 머릴 짓이기든가
한허리를 동강내도 무방하이,
그까짓 일, 난 신이나 악마나
성탁(聖卓)처럼 일체 개의치 않거든
울어? 이게 울어?
벌거벗고 오들오들 떨며 서 있는 내 가슴에 들이댄 서슬 퍼런 칼날의 몸서리치는 냉기가 여전히 생생하게 느껴진다.
한참 동안 가을 가뭄이라도 들듯 내리지 않던 비가 하필 아침부터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스카프를 두른 목 사이로 찬 기운이 스며들어 몸이 으스스 떨린다. 하이룬루(海伦路)역에서 10분 정도 빗길을 걷다 보니 1933 라오창팡이 그 육중한 모습을 드러낸다. 묵직한 잿빛 건물이 빗물에 젖어 축축하다. 우산의 물기를 털어내며 한기가 스민 몸을 부르르 떨었다.
비 내리는 바깥 못지않게 건물 내부도 습하고 축축하다. 날씨 탓도 있겠지만 낮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내부는 어둡고 침침하다.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되어 있는 5층 건물은 4개의 베란다와 26개의 다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이동통로와 건물 사이의 경사로, 다리, 교차로 등이 정신없이 이어져 그 속을 돌아다니고 있자니 현기증이 났다. 금방이라도 미로 속에서 길을 잃다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리고 말 것 같다.
너의 보드라운 살점들을, 그 잘난 철학을, 계속 말랑말랑할 것을 기대하는 너의 인생을 잘게 찢고 잘근잘근 씹어 너덜너덜하게 만들어 주지.
어깨 위로 내려앉는 공기가 무겁다. 기하학적 계단 등 그로테스크한 인테리어 때문인지 어디선가 비명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갑자기 ‘반짝’ 하는 빛이 있어 눈을 들어보니 복도 저쪽에서 순백의 드레스를 입고 환한 웃음을 머금은 신부가 웨딩 촬영을 하고 있다. 누군가의 행복을 보고 웃어줘야 하는데, 순간 구역질이 일었다. 어디선가 역한 피비린내가 난다.
폐허가 된 공장이나 부두 등 오래된 건물의 원형은 그대로 살리되 새롭게 단장해 예술 및 상업지구로 만드는 것은 상하이에서 흔한 일이다. M50과 홍팡(红坊), 라오마토우(老码头) 등. 1933 라오창팡 역시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해 인기 있는 예술 상업지구 중 하나가 되었으며, 2006년 우수 역사 건축물로 지정되었다. 층마다 개성 있는 조각 작품을 배치하고 세련된 인테리어의 카페와 레스토랑, 웨딩 스튜디오와 드라마 제작소, 극장과 사무실들이 들어와 있어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영국인 건축가 스테이블폴드(C.H. Stablefold)에 의해 설계되어 1933년에 완공된 1933 라오창팡은 건물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미학적 가치가 있어 건물을 구경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다.
'牛道(Cattle Path)'
소가 다니는 길? 이 건물에는 사람이 다니는 길과 소들이 다니는 길이 따로 있다. 1933년 당시 이 건물은 세계에서 두 번째, 동아시아에서는 최고로 큰 도살장이었던 것이다. 상하이가 영국 조차지로 개방되고 아시아 식민지 진출을 위한 거점 국제도시로 변화할 때, 점점 증가하는 서양인들에게 위생적으로 도축된 신선한 고기를 공급할 목적으로 건설한 것이다. 상하이 지역 육류의 60%까지 공급할 정도로 번성했던 이곳은 하루에 수백에서 천여 마리까지 소, 돼지를 도살하던 곳이다. 건물 전체가 도살장이라는 목적에 맞게 도살되는 가축의 동선을 고려해 지어졌다. 가끔 보이는 폭이 좁은 통로들은 통로의 폭에 따라 가축들의 크기를 분류해 이동시키던 통로들이다. 완만하고 구불구불한 통로는 도살장으로 가는 소떼가 정체되는 것을 막으려고 일부러 빙빙 돌게 만든 것이다. 牛道.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모른다 해도, 죽음과 공포의 냄새를 맡고 잔뜩 겁에 질려 있던 소들이 처절하게 울부짖으며, 도살당하기 위해 싫어도 걸어가야만 했던 길.
죽음으로 걸어가는 길. 일부러 당시 분위기를 연출하려고 조도를 제한한 것인지 실내는 다른 건물들에 비해 상당히 어둡다. 나팔 모양의 기둥, 도살 전 소들을 가둬두는 곳, 육류 저장 창고, 고기를 신선하게 유지하려고 만든 바람길 등 도살장 전체 구조를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유지한 건물. 옥상 도축장 환풍구 윗부분으로 사용되던 곳에서는 유명 자동차 브랜드의 상품 발표회가, 그리고 행복에 겨운 신랑 신부의 결혼식이 진행된다. 사람들은 환하게 웃으며 고급스럽게 꾸며진 레스토랑에 앉아 타이완식 쇠고기면(牛肉面)의 고기를 씹고, 우아하게 나이프를 들고 스테이크를 쓱쓱 썬다.
갑자기 지글지글 고기 굽는 소리가 들리고, 하얀 연기가 피어오른다. 뜨겁게 달궈진 석쇠가 뿜어내는 뜨끈뜨끈한 열기. 도축한 지 얼마 안 되어 근육이 불끈 움직이는 신선한 살덩이가 검붉은 핏빛 속살을 무력히 드러낸 채 벌겋게 달궈진 석쇠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간다. 단백질이 타들어가는 노린내가 비어 있는 위장을 자극한다. 젓가락으로 고기 한 점을 집어 입에 넣고 질겅질겅 씹는다.
고기를 질겅질겅 씹으며 맛있게 육즙을 빠는 사람들은 도살당하는 가축과 그들을 무참히 죽이고 또 죽여야 하는 도살자들의 삶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의 경계, 죽음을 다루는 도살은 성(聖)과 속(俗)의 경계에서 일어나는 일이니 만큼, 그 일을 신성시했기에 생명의 상징인 피를 신과 자연에 되돌리는 의례를 여러 문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도살장이 기업화, 대형화되면서 하루에 ‘처리’ 해야 하는 동물들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생산성에 눈이 먼 업주들은 더 이상 도살당하는 동물들과 그들을 도살하는 직원들에 대한 배려를 하지 않는다. “더 빨리, 더 빨리!” 빨리 하지 못하면 도살자는 삶의 터전을 잃어야 한다. 고기로 가공되기 전에 죽어 있어야 하는 동물들이 눈을 뜬 채 컨베이어 벨트 위를 지나가며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지고 다리가 잘리는 고통 속에 죽어간다. 부드러운 육질, 최상의 고기 질을 유지하겠다는 업주들의 비뚤어진 집착을 만족시키기 위해.
도살장으로 끌려 들어온 소들의 얼굴. 당황하고 혼란스러워하는 표정. 가슴을 찢는 비명 소리. 공포에 질린 눈빛에서 몇 년 전 내 모습을 본다. 날카로운 칼날이 닿을 때의 몸서리쳐지는 냉기가 다시 살갗을 스치며 온몸에 한기가 든다.
“서둘러 잠들고 싶지도 않다. 꿈속에서 대가리 없는 짐승들이 내게 복수를 하려고 떼 지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 잘못이 없고, 사람이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게 아니고, 내게 선택권이 있었던 일도 아니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헛일이었고, 여전히 그놈들은 나를 원망했다. 그리고 마침내 밤이 된다. 그리고 악몽에서 겨우 빠져나왔다 싶으면 바로 다른 악몽으로 갈 생각을 해야만 한다."
조엘 에글로프 <도살장 사람들> 중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는 일은 얼마나 인간성을 황폐하게 할까. 문득, 공포 속에 죽어가던 동물에서 잔인하고 처참하게 죽이고 또 죽여야 하는 도살자에게로 시선이 옮겨졌다. 흐르는 피와 배설물들의 역겨운 냄새. 처절한 비명 소리. 무서운 속도로 돌아가는 기계의 속도에 맞춰 도살자는 힘들고 끔찍한 일을 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감각을 무감각하게 마비시켜야만 할 것이다. 어쩌면 단 하루도 술을 마시지 않고는 일을 지속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온전히 내 것이 될 수 없다면, 내가 망가뜨려 줘야지, 아무도 가질 수 없게.
전 남편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그를 잊을 수만 있다면 기억상실증에라도 걸리고 싶다. 조건만 보고 사랑 없는 결혼으로 등 떠민 엄마를 원망할 수도 없다. 그의 손아귀로 내 삶을 내팽개치듯 던져 넣은 건 그 누구도 아닌, 나 이솔이었으니까.
넌 날 사랑하지 않아!
그가 옳았다. 물론 어떤 이유도 폭력을 정당화해줄 수는 없지만. 그 어떤 것에도 흥미를 보이지 않고 무력하게 쳐져있던 나를 보며, 삶에 대한 의욕을 놓아버린 나를 보며, 그는 외로움에 치를 떨었을 것이다. 점점 온기가 사라지는 내 눈빛을 보며 뼛속까지 스며드는 한기에 온몸을 떨었을 것이다. 잔인한 폭력은 피해자뿐 아니라 가해자의 영혼도 파괴하고 황폐하게 만든다.
살갗을 스멀스멀 기어가는 차가운 습기에 소름이 쪽 끼친다. 분위기 좋은 카페에 들어가서 따끈한 차라도 한 잔 하자는 손길을 뿌리치고 어깨를 짓누르는 그 육중한 잿빛 건물을 뛰쳐나왔다. 소들의 처절한 울음소리가 뒤통수를 잡아당긴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깊은 소리다. 소름 끼치는 도살자의 웃음소리가 어느새 울음으로 바뀌더니 소들의 울음과 뒤섞인다.
앙다물고 있던 왼쪽 어금니에서 통증이 느껴진다. 육즙이 빠진 질긴 고깃점을 그대로 뱉어내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억지로 꿀꺽 삼킨다. 내가 소화해 내야 할 내 몫의 고통을 씹어 삼키듯.
1933 라오창팡(老场坊)
1933년 당시 영국인이 설계한 동아시아 최대 규모의 도축장이었던 건물로 1950년대까지 도축장으로 쓰이다가 그 뒤 제약 기계 공장, 식품공장, 창고 등으로 활용되다 이마저도 떠나면서 흉물로 방치되었다. 2006년부터 디자인 관련 업체 등이 입주하면서 중국을 대표하는 창의산업단지이자 복합 문화시설로 변신했다. 네모난 건물로 내부는 4개의 베란다와 26개의 자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고, 내부는 미로 같다. 도축장으로 쓰이던 건물답게 외부는 어둡고 음습한 느낌이지만, 내부에 들어선 상점과 음식점들은 모두 현대적으로 인테리어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