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50(莫干山路 50号)
죄와 벌
- 김수영
남에게 희생을 당할 만한
충분한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
살인을 한다
그러나 우산대로
여편네를 때려눕혔을 때
우리들의 옆에서는
어린 놈이 울었고
비 오는 거리에는
40명가량의 취객들이
모여들었고
집에 돌아와서
제일 마음에 꺼리는 것이
아는 사람이
이 캄캄한 범행의 현장을
보았는가 하는 일이었다
---- 아니 그보다도 먼저
아까운 것이
지우산을 현장에 버리고 온 일이었다
숨이 막혀. 질식할 것 같아.
M50에 가기 위해 20분 정도 거리를 힘겹게 걷고 있을 때였다. 종탄루역에서 M50까지의 거리는 유난히 지쳐있던 내가 걸어가기에 좀 힘에 부치는 거리였다. 하지만 그 거리 한쪽의 그라피티 작품들을 감상하는 것도 M50 감상의 일부라기에, 무거운 다리를 힘겹게 끌며 걸었다. 바로 코앞에서 보면 전체적인 이미지를 눈에 담을 수 없는 그라피티의 특성을 고려해 일부러 그라피티가 되어 있는 벽 쪽 길 대신 좁은 찻길을 건너 건너편 길을 걸었다. 한때 거리의 골칫거리였던 그라피티가 ‘자, 여기서 부터 시작! 저기까지만이에요.’ 하고 범위와 경계를 정해주자, 허락받은 장소에 얌전히 질서 정연하게 줄지어 들어섰다. 청소년들과 흑인, 푸에르토리코 인들과 같은 소수민족들이 주도했던 자유와 저항의 그라피티는 없다. 아무런 자극이나 충격도 없는, 그저 그런…… 아니, 몹시도 '숨이 막히는;. 허락받은 '안전한 그라피티'라니.
“금기는 항용 공포와 동시에 지극한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조르주 바타이유 <에로티즘 > 중
금기가 있는 곳엔 지극한 욕망이 따른다. 설사 그곳이 중국이라 해도, 누군가는 허락받지 않고 허락받지 않는 곳에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 문득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리자 내가 걷고 있던 길가, 그라피티가 되어 있는 벽의 반대편 담벼락의 낙서화들이 눈에 들어온다. 분명 허락받지 않았기에 ‘몰래’ 행해졌을 낙서들은 도시미화를 위해서든, 국가의 체제 유지를 위해서든, 개인 소유의 사유재산 보호를 위해서든, 합법적이지 않고, 심지어 ‘범행'으로 간주된다. 다시 한번 숨이 막힌다. 광고판 모델의 얼굴을 덮어 씌운 장난 같은 낙서들과 뜻 모를 글자들을 어지럽게 여러 겹 덧칠한 듯한 그야말로 조악하기만 한 낙서는 금기를 깨는 데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미(美)’가 없다. ‘미’를 추구하는 중국 현대 예술의 메카로 가는 길은 그렇게 한걸음 한걸음 걸음을 뗄 때마다 '혹여 선을 넘을까, 경계를 넘을까' 고삐를 죄며 숨통을 조여왔고, 간혹 그 경계를 넘어 날뛴 흔적과 자취는 전혀 아름답지 못했다.
드디어 M50에 도착. 수많은 갤러리에 전시된 다양한 작가의 여러 작품들과 상하이 특유의 대량 상품 느낌의 거대한 설치 미술품 등을 돌아보았다. 아쉽게도 ‘숨이 막히도록’ 아름다운 작품은 만나지 못했다. 단지 저 작품들을 만들어내면서 ‘숨이 막혔'을 예술가들의 고뇌와 한숨은 뼛속 깊이 느낄 수 있었다. 대놓고 버젓이는 아니더라도 뒤에서 이뤄지는 국가의 검열과, 국가 검열 이전에 스스로가 만든 공포에 의해 이뤄지는 자가 검열. 예술은 ‘초야권’을 가지고 있는 권력에게 눈물을 흘리며 첫날밤을 바친다. 그렇게 시집 온 예술은 이번에는 남편에 의해 돈을 위해 여기저기 팔려 나간다. 가치 있는 작품들이 자본에 팔려 소비되다 버려지는 것을 보는 것은 안타깝다. 버려진 공장 폐허에 하나 둘 예술가들이 모이기 시작했을 때, 이곳은 순수예술을 지향하고 공방마다 예술의 폭이 다양했다. 그야말로 가난해도 사랑만으로 행복했던 초기 연애시절이었다. 하지만 예술산업지구로 지정되고 막대한 상업자본이 몰려들면서, 소박하고 순수했던 신부의 화장이 자꾸 짙어져만 간다.
조그: (…) 그녀(베티)에게 이 세상은 너무 숨 막히는 곳이야” (…) 구해주고 싶어.
영화 <베티 블루> 중 조그의 대사
당신에게 나란 존재는 왜 있는 거지?
도대체 당신은 나를 어떻게 생각해?
우린 소설이야, 현실이야?
분명 한때 세상의 속박에 대해, 그 천박함과 무례함에 대해 함께 얘기를 나눴던 지후인데. 언젠가는 사그라지는 것이 당연한 운명인 사랑을 어떻게든 붙들어 매기 위해 쉬지 않고 닦달하고, 문장 하나를 쪼개고 쪼개어 진절머리 나도록 캐고 분석하는 그는 예전의 그와 정말 같은 사람일까? 그가 ‘정말이냐?’고 물을 때마다 딱 그만큼씩 내 문장은 진실에서 멀어졌다. 정말? 진짜? 왜? 왜? 하는 질문을 들을 때마다, 내 입과 손을 통해 나오는 문장 하나하나에 자가 검열기를 미친 듯이 가동했다.
숨이 막혀. 질식할 것 같아.
그것이 그림이든, 조각이든, 음악이든, 문장이든…… 예술은 분명 영혼의 언어다. 독자를, 청자를, 소비하게 될 대중을 의식해 그들이 듣고 싶은 말이나, 작가 자신이 보이고 싶은 미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그 가치가 떨어진다. ‘미’가 설 자리가 없어진다. 아무것도 눈치 보지 않고, 신경 쓰지 않고 그저 달리고 싶다.
“베티는 다리가 부러진 야생마 같다. 일어 서려고 필사적으로 발버둥을 친다. 햇빛 아래 초원도 그녀에겐 폐쇄된 어둠의 공간일 뿐. 그녀는 가만히 있는 법이 없다.”
영화 <베티 블루> 중 베티에 대한 조그의 내레이션 중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리던 전화가 출판사에서 왔다. 베티가 없었다면 해변의 방갈로에서 페인트 공으로 썩고 말았을 조그는 드디어 베티가 그토록 원했던 작가가 되었지만, 조그는 이미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베티에게 기쁜 소식을 전할 수조차 없다. 마침내 결심한 조그는 베티에게 진정한 자유와 안식을 주기 위해 베티의 얼굴 위에 베개를 덮어 눌러 베티를 질식사시킨다. ‘숨이 막히는’ 세상에서 결국엔 ‘숨이 막혀’ 죽고 말았지만, 그리고 어쩌면 그 어느 누구의 이해도 받지 못했지만, 베티에게는 그녀만의 푸른빛이 있었다.
‘창문도 없고 절대로 부술 수도 없는 철로 된 방에 누워 깊이 잠들어 있는 사람들은 머지않아 죽을 것인데 최소한 잠을 자며 죽기 때문에 죽음의 비애는 느끼지 않을 것이다’라며 철방의 비유를 들었던, 두문불출하던 시기의 루쉰(鲁迅)처럼, 어차피 죽을 것이니 고통이라도 느끼지 말자고 그저 눈을 감고 있어야 할까. 다리가 부러졌음에도, 그걸 알면서도 일어서려고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는 야생마, 베티. 분명 M50 안에도 그런 베티처럼 스스로의 푸른빛을 띤 채 일어서려고, 달리려고 발버둥 치는 예술가들이 있다. 그래서 ‘숨이 막히는’ 이 순간에도 다시 일어나 보려고 필사적인 발버둥을 쳐볼 힘을 얻는다.
M50(莫干山路 50号)
중국 현대미술의 흐름을 읽기 위해선 M50으로 가야 한다. 상하이 서북쪽 외곽에 자리한 M50은 베이징의 다산즈(大山子)798과 함께 중국 현대 예술의 메카라 할 수 있다. 한때 평범한 강기슭 마을이었던 모간산루 일대는 193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쑤저우허(苏州河)로 원료를 싣고 와 가공한 뒤 완제품을 강으로 실어 나르던 대규모 방직공장단지였다. 방직산업이 쇠퇴한 90년대 이후부터 공장들이 하나둘씩 문을 닫자, 낮에도 귀신이 나올 듯 음산하고 을씨년스러운 곳이 되어갔다. 강의 수질은 공장 폐수로 참담했고 주변은 근래까지도 빈민촌으로 인식되었다. 그런 텅 빈 공장의 널따란 공간을 싼 임대료에 빌릴 수 있게 되자 예술가들이 창작을 위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1998년 대만 출신 건축가 덩쿤옌(登琨艳)을 시작으로 각 분야의 예술가들이 모여들자 2004년 상하이 시에서 모간산루 일대를 예술산업지구로 선정하고, 이듬해 '모간산루50호(M50)'라는 정식 명칭을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