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간 꽃병 - 쉴리 프리돔
금 간 꽃병
-쉴리 프리돔
이 마편초꽃이 시든 꽃병은
부채가 닿아 금이 간 것.
살짝 스쳤을 뿐이겠지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으니.
하지만 가벼운 상처는 하루하루 수정을 좀먹어 들어
보이지는 않으나 어김없는 발걸음으로
차근차근 그 둘레를 돌아갔다.
맑은 물은 방울방울 새어 나오고
꽃들의 향기는 말라 들었다.
손대지 말라, 금이 갔으니.
곱다고 쓰다듬는 손도 때론 이런 것
남의 마음을 스쳐 상처를 준다.
그러면 마음은 절로 금이 가
사랑의 꽃은 말라죽는다.
사람들의 눈에는 여전히 온전하나
마음은 작고도 깊은 상처에 혼자 흐느껴 운다.
금이 갔으나 손대지 말라.
"'영혼의 문둥병*'이라고 들어 보셨어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보이지도 않았다.
예쁘장한 얼굴에 쿨하고 시원스런 눈매.
그저 아름다운 꽃병인 줄만 알았다.
영혼의 문둥병이라.
감각이 없어졌다는 거겠지.
기쁨도, 열정도, 감동도 느낄 수 없고
심지어 분노도, 슬픔도, 괴로움도 느낄 수 없는
무감각한 영혼.
부채로 슬쩍 갖다 대었든,
곱다고 쓰다듬었든,
그 아름다운 꽃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 금이 가 버렸다.
차라리 상처를 아프다 하면 좋을 텐데,
아프지도 않다 하고,
눈물도 나지 않는다 한다.
이른 새벽,
문득 이제 겨우 이름 석자밖에 알지 못하는 그녀를 떠올리며
두 손을 모았다.
그러다 두 뺨에 주르르 눈물이 흘렀다.
무표정한 얼굴로 ‘영혼의 문둥병*’이란 병명을 알려준 그녀를 떠올리며,
그렇게 치유되기 시작되었다.
눈물 한 방울로
내 영혼의 문둥병*이
그렇게
*문둥병: 나병, 한센병을 낮잡아 부르는 말. ‘그녀’가 사용한 말을 그대로 옮기느라 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