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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Feb 22. 2021

꼰대 짓이나 앓는 소리 안 하는 진짜 어른의 글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_ 박완서 

이런 작가라면 영원히 좋아할 수 있을 것 같다! 


솔직히 좋아하는 작가가 노년에 쓴 글을 읽고 실망한 적이 꽤 많다.  

첫째, (‘꼰대’가 연상되는) 뭔가 가르치려는 태도 (심지어 시나 소설에서도) 때문이고,

둘째, 노쇠해 가는 육체에 대한 ‘앓는 소리’ 때문이다. 

이 책을 집어 들 때만 해도 혹여라도 좋아하는 작가에게 실망하게 될까 몹시 두려웠다. 


박완서 작가도 예외 없이 늙어갔고, 심지어 생때같은 아들을 먼저 보낸 아픔마저 겪었는데, (적어도 이 책에 수록된 글 속에서는) 오히려 문장 곳곳에서 반짝이는 ‘빛’을 찾을 수 있었다. 

책을 덮을 무렵, 문득 이렇게 늙어가다 세상을 뜨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_ 박완서 에세이


"예사로운 아름다움도 살날보다 산 날이 많은 어느 시기와 만나면 깜짝 놀랄 빼어남으로 빛날 수 있다는 신기한 발견을 올해의 행운으로 꼽으며 1982년이여 안녕.” 


“나는 손자에게 쏟는 나의 사랑과 정성이 갚아야 될 은공으로 기억되기보다는 아름다운 정서로 남아 있길 바랄 뿐이다. 나 또한 사랑했을 뿐 손톱만큼도 책임을 느끼지 않았으므로. 

내가 불태운 것만큼의 정열, 내가 잠 못 이룬 밤만큼의 잠 못 이루는 밤으로 갚아지길 바란 이성과의 사랑, 너무도 두렵고 무거운 책임감에 짓눌려 본능적인 사랑 또한 억제해야 했던 자식 사랑…….

이런 고달픈 사랑의 행로 끝에 도달한, 책임도 없고 그 대신 보답의 기대도 없는 허심한 사랑의 경지는 이 아니 노후의 축복인가.” 


"자랑할 거라곤 지금도 습작기처럼 열심히라는 것밖에 없다. 잡문 하나를 쓰더라도, 허튼소리 안 하길, 정직하길, 조그만 질실이라도,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진실을 말하길, 매질하듯 다짐하며 쓰고 있지만, 열심히라는 것만으로 재능 부족을 은폐하지는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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