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리 - '10시의 잎이 11시의 잎에게'
10시의 잎이 11시의 잎에게
-이규리
깜빡 눈감을 때 연두와 눈뜰 때 연두가 같지 않고
조금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지 않음을
어떻게 설명할까
내가 있었음과 당신의 없었음은
또 어떻게 말할까
늦은 오후에 후둑 비 떨어진다
비와 비
그 사이가 바로 연두
말하려다 만다
연두를 설명할 수 없었던 일처럼
사랑도 그러했는데
다 듣고는 믿지 않을 거면서
당신들은 말하라 말하라 다그친다
설명하라 한다
할수록 점점 다른 뜻이 되어가는
절망 배신 희생 죽음 따위와 뭐가 달라
그들 생애엔 순간을 포함하지 않았으리
비루하지도 않았으리
연두가 어떻게 제 변화를 설명할 수 있겠는지
10시의 잎이 11시의 잎에게
마음이 있어도 마음이 영 옮기지 못하는
그 결별들을 다 어떻게
아주 오래전
스치듯 지나친 누군가에게서 갑자기 날아온 메일 한 통.
‘지난날을 정리하는 시간이 있지’라는 제목의 메일은 과연 수신자에게 가닿을 수 있을지 몰라 머뭇거리고 있었다.
수신인의 이름은 바뀌지 않았지만, 메일은 전혀 다른 누군가의 손에 배달되었다.
'조금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지 않음을
어떻게 설명할까’
(이규리 ‘10시의 잎이 11시의 잎에게)
설명할 수 없는 그 간극을, 그 경계를 훌쩍 넘으며
흔적을 남기기 위해 글을 쓰는 건지 모른다.
“어떤 이는 문장 한 줄이 증거가 되어 전과자가 되기도 하니, 문장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럼에도 여전히 마음 조각을 떼어 편지에 담는다. 찰나에 존재했다 사라질 순간과 함께.
편지를 쓰고 있던 나는 그 편지 안에서 또 다른 삶을 살아간다고 믿는다. 종이 위에 담겨 흩어진 열여섯 살의 나, 스무 살의 나, 서른세 살의 내가 지금도 어딘가에서 잘 살아가고 있겠지. 하나의 선으로 이어진 시간의 틀을 슬쩍 넘어.”
‘편지’ 일부, <여백을 채우는 사랑>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