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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Mar 24. 2021

오랜 시간 타지에서 살아온 이들 특유의 울림

<열다섯 번의 밤> - 신유진

누군가의 추천으로 읽게 된 신유진의 <열다섯 번의 밤>. 

<열다섯 번의 낮>이 있다는 걸 알았지만, 둘 중 하나만 고른 것은 혹시라도 좋아할 수 없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시간과 배송비를 추가 지불해야 하는 ‘해외배송’족이다 보니…) 


어쩐지 어두워진 후에 읽어야 더 잘 읽힐 것 같아, 밤을 기다렸다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다 가끔은 내가 쓴 게 아닌가 싶은 친근한 문장을 만나기도 했다. 

아마 오랜 시간 타지에서 살아온 이들 특유의 울림, 이방인의 감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당신은 슬픕니까?” 
얀이 물었다. 
“그런 말은 이상해.” 
내가 대답했다. 

(…)

“당신은 슬픕니까?” 
얀이가 떠나고 수년이 지난 지금, 얀이는 없고 얀이의 물음만 남았다. 늦은 밤, 불을 끈 방에서 화면 속 깜빡이는 커서를 볼 때, 해가 지고 또 해가 뜨는 것을 보며 오늘 내가 놓친 것들을 생각할 때, 문이 잠긴 공원 너머 혼자 켜진 가로등을 볼 때, 글을 쓰고 책을 출간하고 그래도 여전히 허전한 무언가가 속을 파고들 때, 얀이는 없고 얀이의 문장만이 나를 찾아와 말을 건다. 
당신은 슬픕니다, 라고 

-신유진 <열다섯 번의 밤> 중


몹시 익숙한 단어들을 다시 만져주고 싶을 때가 있다. 퇴색된 데다 향이 날아가 무취가 된 단어들, 때로는 일그러지거나 축 늘어져 힘이 빠진 단어들. 그들을 원래대로 회복시킬 능력은 없으나, 그 상태를 알아봐 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그리고 그런 일은 ‘원래 그 자리’가 아닌 약간 떨어진 '다른 자리'에 있기에 더 잘할 수 있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열다섯 번의 밤> - 신유진


<열다섯 번의 밤>의 마지막 장을 읽기 전에 이미 <열다섯 번의 낮>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리고 다시 글이 쓰고 싶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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