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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Sep 24. 2021

하루 3천 건의 낙태를 막지 못하는 법은 그저 위선

<유럽 낙태 여행> - 우유니,이두루,이민경, 정혜윤

뱃속의 태아도 생명이니 소중하다. 


흠을 찾기 어려운 아름다운 문장이다. 당연히 동의하고, ‘낙태 금지’ 법을 찬성하는 쪽으로 기운다. '낙태 금지’가 법 조항에 들어있기만 하면 소중한 태아의 생명이 저절로 지켜질 거라고 굳게 믿고 있으니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영화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의 배경이 되는 1965~1989년 루마니아 차우셰스쿠 집권기를 보자. 그가 집권한 23년 동안 엄격한 낙태 금지 법 때문에 불법 낙태로 사망한 여성은 보고된 것만 1만 명에 이르고(실제 사망자는 훨씬 더 많았을 것으로 추정), 2만 5천 명이 넘는 아이가 버려졌다. 태아의 생명을 지키려던 법이 수많은 여성을 죽음으로 몰고 갔고, 수많은 ‘버려진 아이들’을 열악한 시설에 던져 넣었다. 건강하게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는 환경 조성은 하지 않은 채, 낙태를 법으로 금지하는 일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잘 보여준다. 


낙태를 무지막지하게 처벌하지 않는 한국은 그럼 어떨까. 낙태한 여성에게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백만 원 이하의 벌금, 의료인에게 2년 이하의 징역을 처하도록 법으로 정하고 있다. 하지만 가임기 여성 5명 중 1명이 낙태 경험이 있으며 임신 중절 수술을 받는 여성 다수는 기혼 여성이다. 하루에 3천 건 이상의 낙태가 이뤄지고 있지만, 실제 행정처분을 받는 경우는 연평균 한두 자리 숫자다. 결국 한국의 '낙태 금지' 법은 명백한 ‘위선’인 셈. 


물론 생명을 그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고, 이상적으로는 '낙태 없는 세상'을 꿈꾼다. 하지만 태아의 생명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수많은 여성의 생명을 위험으로 모는 폭력적이고 위선적인 법 조항만 내세우는 데에는 반대한다. 낙태죄가 낙태를 막지 못하고, 단지 더 비싸고 위험한 낙태를 하게 만들 뿐이라면 당연히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유럽 낙태 여행> - 우유니, 이두루, 이민경, 정혜윤


우유니, 이두루, 이민경, 정혜윤 

함께 출판사를 만들어 책을 출간하기도 하고, 갑작스럽게 ‘가자’ 하고 두 달간 '유럽 낙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서로'가 있다는 게 얼마나 부러운지. 늘 '네 명'이 똘똘 뭉쳐 다니던 1,20대 때 친구들이 그립다. 이제 가능성 희박해 보이는 '뜬금없는' 짓을 하자고 할 때, 함께 나서 줄 사람이 누가 있을까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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