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꿈치를 주세요> - 황정은 외
퀴어 단편집 <팔꿈치를 주세요>
구약 성경 중 사사기에는 웬만한 막장 드라마보다 더 막장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일명 레위 인 첩 사건. 레위 인 (제사장 지파로 요즘으로 치면 목사)이 첩을 두고, 그 첩은 행음하다 친정으로 돌아간다. 시간이 흐르자 레위 인은 첩이 그리워져 처가에 가서 그 첩을 데려오려 한다. 장인은 아쉬운 마음에 먹고 마시는 잔치를 벌여 레위 인이 제때 떠나지 못하도록 잡는다. 그렇게 지체하다 느지막이 떠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베냐민 지파 땅(기브아)에서 하룻밤 묵게 된다. 나그네를 대접하라는 말씀은 무시하고 아무도 레위 인 일행을 재워주려 하지 않는데, 마침 노인 하나가 나그네를 맞는다. 그런데 동네 사람들이 몰려와 레위 인을 내놓으라고 한다. 나그네를 강간하려는 행위가 악하다며 그들을 말리던 노인이 대신 자기 딸을 내어 주고, 레위 인이 첩을 그들에게 내어 준다. 밤새 농락을 당한 레위 인의 첩이 다음 날 아침 시신으로 발견되자, 화가 난 레위 인이 첩의 시체를 토막 내어 베냐민 지파를 제외한 나머지 지파에 나눠 보내고 베냐민 지파와 전쟁을 하도록 부추긴다.
요즘 (나를 포함한) 많은 크리스천이 이 레위 인 같은지 모른다. 악을 행한 베냐민 지파를 징계한다는 정의감에 혈안이 되어 강경한 태도로 그들을 정죄하지만, 정작 자기 죄는 돌아보지 않는... 레위 인이 첩을 두고, 먹고 마시는 향락에 빠진 데다, 자신이 변 당하는 걸 피하겠다고 약자인 첩과 노인의 딸을 밤새 농락당하도록 내어 준 건 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신앙의 이유로) 동성애를 지지하지는 않지만, 성소수자 편에 서고 싶은 심정일 때가 많다. 퀴어 소설이나 퀴어 사례에서 그들의 구체적인 서사를 읽다 보면, ‘성적 지향’은 잘 보이지 않고 오히려 약자들의 신음과 울부짖음이 자주 들리기 때문이다. 수많은 '레위 인 첩과 노인의 딸'의 부르짖음이 들려 마음이 괴롭다.
무섭게 정죄의 칼을 들이대기 전에 먼저 팔꿈치를 가만히 내어줄 수 있다면…
팔꿈치를 주세요.
네?
제 왼편에 서서 미란 씨 오른쪽 팔꿈치를 살짝 내밀어주세요. 제 왼손을 그 팔꿈치에 올려주시고요.
(…)
이렇게 하면 미란 씨가 저보다 반보 앞에 서게 돼요.
영은*이 내 팔꿈치를 살며시 감싸 쥐었다.
이제 미란 씨만 믿을 거예요.
-안윤 <모린> 중
*영은은 시각장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