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소희 Sep 30. 2021

명품 가방이나 옷 없는 내 모습이 초라하다고 여겨질 때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 - 장명숙

(중요한 행사에서 사회를 보거나 하는) 일 때문이 아니라면, 대체로 저렴한 옷에 에코백을 들고 다닌다. 그러다 얼마 전 어떤 모임에서 문득 브랜드도 없는 낡은 내 옷과 가방이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애꿎은 남편에게 “나도 좋은 옷이랑 가방 좀 사 줘.” 하고 투정을 했다. 남편은 물론 당장 사러 가자고 대꾸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남편이 말려서 ‘못’ 사는 게 아니었으니까. 


다음 날이 되자, 이제는 저렴한 옷을 입고 창피해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지난 몇 년 간 구제와 헌금한 내용을 정리해 놓은 엑셀 파일을 열어보자 얼굴이 화끈거렸다. 값비싼 옷이나 명품 백을 사지 않는 이유는 분명 있었다. 그 돈을 아껴 더 가치 있는 일에 쓰고 싶었다. 그런데 기껏 씀씀이는 줄여놓고, 실제 구제와 헌금에 쓴 액수가 해마다 줄고 있는 걸 눈으로 확인하니 뜨끔했다. 좋은 곳에 쓰지도 않으면서 돈을 아끼기만 한 거라면 궁상맞고 인색한 것과 도대체 뭐가 다를까. 


"골프 대신 내가 찾은 일은 봉사하기였다. 골프장에서 하루 만에 모두 쓰게 될 만큼의 비용으로 관심이 고픈 어린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줄 수 있었고, 친부에게 성폭행을 당해 증오의 기억을 떨치지 못해 끊임없이 면도칼로 자해를 감행한 소녀를 보며 그 아이의 손목에 새겨진 송충이 같은 흔적을 지워주기도 했다.  

호화로운 외식을 줄인 비용으로 부모에게 버림받아 영혼에 구멍이 난 어린이가 치유받을 수 있도록 심리상담 비용을 보탰다. 가능한 한 내게 투자하지 않고 절제하여 모은 비용으로 구순구개열로 태어난 아이의 수술도 지원했다. 수술 뒤 밝게 웃는 아이의 모습을 볼 때의 희열이 어찌 고급 옷을 입는 즐거움에 비길 수 있을까. 

... 

25년 동안 봉사를 하면서 얻은 깨달음이 있다. 어떤 돈은 시류에 휩쓸려 쉽게 사라지지만 어떤 돈은 가까운 누군가에게 힘을 준다는 사실이다.” 

-장명숙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 중


돈이 부족한 게 아니라 사랑이 부족한 것이었다. 누군가의 필요를 알아채려면 관심이 필요하다. 더구나 자존심에 상처를 주지 않고 도우려면 극도의 세심함이 필요하다. 기아대책이나 컴패션, 기타 선교지에 매달 일정한 액수를 계좌 이체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 정도로 할 일을 다했다 여기며 안일한 자만심에 빠지고 싶지는 않다. 가장 필요로 하는 곳을 민감하게 알아채고, 제때 적절한 방법으로 내가 가진 것을 흘려보내며 살고 싶은데… 여전히 미련한 내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밀라논나(저자)의 옷을 맵시 있게 입는 안목이나 센스도 부럽지만, 무엇보다 물질을 가장 귀한 곳에 제대로 흘려보낼 줄 아는 섬세함을 배우고 싶다. 절약한 돈이 가장 필요한 이들에게 제대로 전해질 수만 있다면, 부끄러움 대신 당당함이 주는 빛이 패션을 대신할 수 있지 않을까.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 - 장명숙


매거진의 이전글 칼을 들이대기 전에 먼저 팔꿈치를 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