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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Feb 04. 2022

바람을 담는 마음 주머니 입구는 좁게!

바라는 대로 이뤄진다는 말

바라는 대로 이뤄진다는 말, 믿는 이도 있고 믿지 않는 이도 있을 것이다. 나는 대체로 믿는 쪽인데, 그럼에도 막상 바람대로 이뤄졌을 때 깜짝 놀라기도 한다.  


신혼 시절, 남편과 함께 골프를 시작했다. 우리가 신혼살림을 시작한 곳은 중국이었기에, 골프에 들어가는 비용도 저렴하고 초보가 라운딩 하기에 부담도 적었다. 옷차림이나 실력 등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공기 좋고 경치 좋은 곳에서 한참을 걸을 수 있는 것도 골프의 매력 중 하나다. 하지만 1년 만에 큰 아이를 임신했고, 바로 골프에서 손을 떼었다. 


그렇게 16년이 지났고, 손을 놓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골프에 대한 매력은 기억나지 않고 온갖 흠만 떠올랐다. ‘여우의 신포도’처럼 ‘인지 부조화’를 해결하기 위한 나름의 해결책이었을 것이다. 


남편과 취미를 공유하기 위해서나 원활한 사회생활을 위해 다시 골프를 할 필요가 생겼다. 아이들이 많이 자랐으니 더 이상 육아를 핑계 댈 수도 없다. 골프를 다시 해보자고 새해 계획에 넣기도 했지만, 마음먹었다고 해서 마음이 정말 동하는 건 아니었다. 머릿속에는 여전히 골프가 싫은 이유들이 맴돌고 있다. 


긴 설 연휴, 스크린 골프 약속이 잡혔다. 예전부터 함께 하자고 졸라온 이들을 거절할 마땅한 이유가 없었다. 날짜가 다가올수록 불편한 마음이 일었다. 헛스윙만 하다 돌아오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되었다. 약속이 있는 전날, 몇 백 페이지 되는 ‘벽돌 책’을 읽으며 휴대폰을 멀리 미뤄두었다. 저녁이 되어 두툼한 책을 다 끝낸 뒤에야 오랜 시간 던져 놓았던 휴대폰을 열었다. 수많은 메시지들 중에는 예약이 중복되는 바람에 골프 약속을 미룰 수밖에 없다며 미안하다는 메시지가 있었다. 미안하다는 말이 무색하게 나는 '신난다'는 이모티콘을 날리며 괜찮다고 했다. 


바라는 대로 이뤄진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사소한 일, 하기 싫은 일을 미루는 바람도 이뤄진다니. 부담에서 해방되어 가벼운 기분으로 키득거리며 저녁을 보냈다. 그러다 문득 앞으로 마음 주머니에 어떤 바람을 담아야 할지 고민하게 되었다. 바람이 이뤄진다니 설레기는 하지만 다른 한편 두려웠기 때문이다. 하기 싫다고 미뤄지기를 바라고 바람대로 미뤄지기만 하면,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는 건 아닐까. 


머릿속으로 많은 걸 기대하고 상상할 수 있지만, 바람을 담을 마음 주머니는 잘 정돈하고 싶다. 바람들을 신중하게 고르고 골라 이뤄졌을 때 빛이 될 수 있는 것만 담기로 한다. 바람을 담는 마음 주머니의 입구는 좁아졌지만, 잘 골라 넣은 바람들은 그 안에서 아름답게 익어갈 것이다. 이뤄진 그날 찬란하게 빛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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