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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Feb 03. 2022

‘시’ 자 들어간 건 시금치도 안 먹는다는데, 이건?

멋있으면 다 언니!

너의 시간과 함께하고 싶어 요즘 새벽 3시에 일어나 책을 읽어. 
너의 삶을 나의 삶에 포개 보려고...


이 달콤한 말은 연인이 건넨 말이 아니다. 멀리서 나와 함께 새벽을 열고 싶어 하는 건 시어머니의 막내 동생인 시이모다. 몇 년 전 설 연휴 때 일본 다카라즈카에 있는 시이모 집에서 며칠 머물며 오사카, 교토 등을 여행했는데, 그때 밤마다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시이모와 친해졌다.  


‘시’ 자 들어간 건 시금치도 안 먹는다는 말이 있다. 시어머니와 사이가 좋다고 말해도 의아하다는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 시이모라니. 편견을 깨는 순간은 언제나 통쾌하다. 


다카라즈카에서 돌아온 후 코로나로 인해 몇 년 동안 일본에 건너가 볼 수 없어 아쉬웠는데, 마침 도쿄에 사는 ‘인친’이 책 나눔을 하기에 책 두 권을 시이모께 보내 드렸다. 책을 받은 시이모는 몇 년 만에 한국 책을 읽게 되어 고맙다고 책을 보내준 인친에게 손편지를 쓰셨다. 잔잔하게 꽃이 그려진 한지에 붓펜으로 단정하게 쓴 글씨는 곱디 고운 시이모를 닮았다. ‘조카며느리를 잘 둔 덕에 행복을 누린다’며 아랫사람을 세워 주는 마음도 곱다. 


시이모의 손편지


또래를 만나면 이제 곧 50이라 여기저기 아픈 데가 많다,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등 앓는 소리를 많이 듣게 된다. 그리고 그 분위기에서 혼자 ‘나이 먹는 것이 설렌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게 한바탕 부정적인 말을 나누고 나면 나이 들어가는 일이 두렵고도 서러워진다. 


하지만 나이가 훨씬 많은 데다 앞에 ‘시’ 자 붙어 있다 해도, 마음이 열려 있고 도전을 멈추지 않는 사람과 함께 하는 일은 즐겁다. 시이모는 인스타에 일본인들에게 한국어와 문화를 가르치는 모습이나 손수 만든 수공예품, 정갈한 음식 사진 등을 올린다*. 내 또래 친구도 인스타를 잘하지 않기에 그런 시이모의 모습은 신선하다. 인스타를 통해 조카며느리의 삶을 들여다 보고 칭찬을 건넨다. 새벽에 일어나 혼자 만의 시간을 누리며 글을 쓰고, 여러 나눔을 통해 사랑을 흘려보내는 모습이 멋지다고. 심지어는 '닮고 싶다’는 말을 건넸는데, 그 말이 한동안 주저앉아 있던 나를 일으켜 세웠다. 


이러저러한 일로 잠드는 시간이 들쭉날쭉해지자 종종 새벽 시간을 침범받고 있었다. 리듬이 망가지자 그토록 몰입해 있던 글쓰기가 힘든 일이 되었다. 꺼져버린 시동을 다시 걸어야 하는데, 미적미적 미루고만 있었다. 주파수를 내게 맞추고 있었기 때문일까. 시이모가 맞춤한 때에 내게 꼭 필요한 말을 건넨 것이다. 


새벽 3시에 일어나 함께 해줄게. 다시 힘내어 써 봐.


멋있으면 다 언니! 인친을 통해 시이모께 보내 드린 책 중 한 권의 제목이다. 나보다 어린 이들과 마음을 열고 소통하고 끊임없이 삶을 멋지게 디자인해나가는 이런 어른을 만나면 희망이 생긴다. 이렇게 '멋진 언니’가 되고 싶다 생각하면 나이 드는 일이 설레는 일이 된다.  


‘시이모’라는 타이틀을 가진 ‘멋진 언니’ 덕분에 오랜만에 새벽 시간에 글을 쓸 수 있었다. 보이지는 않지만 멀리 다카라즈카에서 캄캄한 새벽 불을 켜고 혼자 앉아 책을 읽고, 또 새로운 꿈을 꾸고 있을 언니가 함께 깨어 있다는 걸 아니까. 절대 혼자가 아니란 걸 아니까. 




(시이모 인스타: @soonnamch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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