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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Jan 17. 2022

새벽 3시, 열린 창문으로 보이는 것

낮도 밤도 아닌 경계의 시간

새벽 3시,  

이 겨울 창문을 열기에는 아직 추운 시각이다.  


이중창 안쪽 유리문만 살짝 밀어 열었을 뿐인데, 냉기가 밖으로부터 빠르게 흘러들어온다. 책상 아래 놓인 무릎이 시큰하고 양말을 신지 않은 발이 살짝 시리다. 맞은편 아파트 건물에 아직 불 켜진 창이 보이지 않는다. 바깥에 드문드문 세워져 있는 가로등만 희미한 불빛을 뿜어낼 뿐이다.  


아직 많은 이들이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시각. 나 역시 한동안은 이 시각에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약 기운이나 감기 기운 때문에 그럴 때도 있었고, 이유가 있을 때는 그나마 다행이라 여겼다. 자고 있던 건 아니었는데, 그럼에도 자는 척 눈을 감아버리곤 했다. 뭔가를 간절히 쓰고 싶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쓰고 싶지 않은 기분이 정확히 평형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아니다, 실은 쓰고 싶지 않은 기분이 훨씬 무거웠기에 몸을 일으킬 수 없던 것이다.  


낮도 밤도 아닌 경계의 시간. 

몸의 통증과 마음의 상처를 가장 예민하게 느낄 수 있는 시간. 

새벽 3시. 


낮도 밤도 아닌 경계의 시각은 매일 조금씩 달라진다. 

창밖이 새까만 오늘의 새벽도, 어스름 속에서도 사물이 또렷이 보일 몇 달 후의 새벽도 

시곗바늘이 같은 곳을 가리킬지라도, 분명 농도와 밀도가 다르다.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는 사람은  

낮도 밤도 아닌 경계의 시간, 

잠깐 존재하는 그 틈에서 겨우 안도감을 느낀다. 


그 틈에 잠시 숨어 다시 열린 창문으로 바깥을 내다본다. 

보이는 건 어둠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불 꺼진 침대 위에서 뒤척이는 어깨. 

쿨럭쿨럭 기침을 하다 물을 찾아 더듬는 손. 

이불을 뒤집어쓰고 훌쩍이는 눈물. 


창밖으로 보이는 건 벽 너머 누군가가 아니라 

이미 지나가버린 수많은 새벽 3시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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