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는 질문 던져 보기
만약에 내게 소가 생긴다면?
많은 선택들이 달라질 것이다. 그동안 아파트의 깨끗함과 편리함을 선호했다면, 이제는 소를 위해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가야겠지. 소를 당장 팔아버릴 게 아니라면, 조금 불편하더라도 도심을 벗어나 한적한 시골로 갈 것이다. 시골로 옮기고 나면 단순히 소가 생긴 것 이상의 변화가 삶에 들이닥치겠지.
마당이 생기면 소에게 작은 외양간을 지어줄 것이다. 비가 오면 비를 피하고 해가 내리쬘 때 그늘을 얻을 수 있는. 여름에는 너무 덥지 않고 겨울에는 너무 춥지 않은 외양간을 짓기 위해, 농부들을 만나 물어보며 공부를 해야 할 것이다. 소에게 먹일 여물을 쑤는 방법도 함께. 소에 관해 아는 게 없는 나는 소 한 마리 때문에 새로운 공부를 이어갈 것이다.
소에게 잠자리와 먹을 걸 해결해 주면, 소와 본격적으로 사귀어 보고픈 마음이 생길 것 같다. 아침이 오면 소를 끌고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산책을 하게 될지 모른다. 천천히 걷다가 소가 좋아하는 풀이라도 발견하면 얼른 알아채고 소를 자유롭게 풀어주어 풀을 뜯게 할 것이다. 그 옆에 앉아 소가 풀을 뜯는 걸 마냥 바라봐도 좋을 것 같다. 소가 되새김질하는 걸 지식으로만 아는 게 아니라, 두 눈으로 목격해 경험으로 간직할 준비를 하며.
산책 시간이 길어지고, 소와 어느 정도 친해지고 나면 대화를 하게 될지 모르겠다. 물론 소는 대부분 아무 소리 없이 내 이야기를 듣고 가끔 꼬리를 흔들어 파리를 쫓을 것이다. 어쩌다 한 번쯤은 ‘움머’하고 말대꾸를 해줄지 모른다. 그보다 더 자주 눈을 꿈벅거리며 공감해주겠지.
삶의 터전을 옮긴 후 내 일상도 달라질 것이다. 소 덕분에 생긴 마당이나 텃밭에 채소나 과일나무를 심을지 모른다. 갑자기 농부가 되지는 못하겠지만, 스스로 먹을 채소를 키우고 자급하는 삶 정도는 꿈꿀 수 있겠다. 도시의 삭막하고 시끄러운 삶에서 점점 멀어지고, 자연의 소리에 귀를 더 잘 기울이는 사람이 될 것이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적당한 육체노동을 매일 하는 삶 덕분에 얼굴은 좀 타겠지만, 건강해진 걸 날마다 실감할 것이다. 불쑥 찾아온 소 한 마리로 얻은 건강과 행복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고, 점점 더 행복해질 것이다.
소의 수명이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하지만, 우리 집에 온 소가 오래오래 살아주었으면 좋겠다. 소가 죽을 때가 되어 고기를 팔아야 하나 마나로 고민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 오래. 원치 않지만 만약 소가 죽는 걸 보게 된다면, 그가 남긴 고기를 먹을 것이다. 몹시 질기고 맛이 없겠지만, 그가 남긴 고기를 한 점도 낭비하지 않고 꼭꼭 씹어 먹을 것이다. 소와 함께 했던 많은 추억이 내가 삼킨 살점과 함께 내 속으로 들어가 머무는 걸 느낄 것이다.
아직 내게 소는커녕 송아지 한 마리도 없지만, 소가 있는 삶을 상상해 보는 건 멋진 일이다. 갑자기 소라도 한 마리 생기지 않고는 다람쥐 쳇바퀴 굴리듯 굴러가는 삶을 변화시킬 힘이 없다. 불쑥 소 한 마리가 생겨 삶에 큰 변화를 주길 은근히 바라게 된다.
소가 있는 삶,
이 짧은 시간 상상해 본 것만으로도 충분히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정말 멋진 삶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