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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Feb 09. 2022

만약에 내게 소가 생긴다면?

뜬금없는 질문 던져 보기

만약에 내게 소가 생긴다면? 


많은 선택들이 달라질 것이다. 그동안 아파트의 깨끗함과 편리함을 선호했다면, 이제는 소를 위해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가야겠지. 소를 당장 팔아버릴 게 아니라면, 조금 불편하더라도 도심을 벗어나 한적한 시골로 갈 것이다. 시골로 옮기고 나면 단순히 소가 생긴 것 이상의 변화가 삶에 들이닥치겠지. 


마당이 생기면 소에게 작은 외양간을 지어줄 것이다. 비가 오면 비를 피하고 해가 내리쬘 때 그늘을 얻을 수 있는. 여름에는 너무 덥지 않고 겨울에는 너무 춥지 않은 외양간을 짓기 위해, 농부들을 만나 물어보며 공부를 해야 할 것이다. 소에게 먹일 여물을 쑤는 방법도 함께. 소에 관해 아는 게 없는 나는 소 한 마리 때문에 새로운 공부를 이어갈 것이다.  


소에게 잠자리와 먹을 걸 해결해 주면, 소와 본격적으로 사귀어 보고픈 마음이 생길 것 같다. 아침이 오면 소를 끌고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산책을 하게 될지 모른다. 천천히 걷다가 소가 좋아하는 풀이라도 발견하면 얼른 알아채고 소를 자유롭게 풀어주어 풀을 뜯게 할 것이다. 그 옆에 앉아 소가 풀을 뜯는 걸 마냥 바라봐도 좋을 것 같다. 소가 되새김질하는 걸 지식으로만 아는 게 아니라, 두 눈으로 목격해 경험으로 간직할 준비를 하며. 


산책 시간이 길어지고, 소와 어느 정도 친해지고 나면 대화를 하게 될지 모르겠다. 물론 소는 대부분 아무 소리 없이 내 이야기를 듣고 가끔 꼬리를 흔들어 파리를 쫓을 것이다. 어쩌다 한 번쯤은 ‘움머’하고 말대꾸를 해줄지 모른다. 그보다 더 자주 눈을 꿈벅거리며 공감해주겠지. 


삶의 터전을 옮긴 후 내 일상도 달라질 것이다. 소 덕분에 생긴 마당이나 텃밭에 채소나 과일나무를 심을지 모른다. 갑자기 농부가 되지는 못하겠지만, 스스로 먹을 채소를 키우고 자급하는 삶 정도는 꿈꿀 수 있겠다. 도시의 삭막하고 시끄러운 삶에서 점점 멀어지고, 자연의 소리에 귀를 더 잘 기울이는 사람이 될 것이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적당한 육체노동을 매일 하는 삶 덕분에 얼굴은 좀 타겠지만, 건강해진 걸 날마다 실감할 것이다. 불쑥 찾아온 소 한 마리로 얻은 건강과 행복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고, 점점 더 행복해질 것이다. 


소의 수명이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하지만, 우리 집에 온 소가 오래오래 살아주었으면 좋겠다. 소가 죽을 때가 되어 고기를 팔아야 하나 마나로 고민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 오래. 원치 않지만 만약 소가 죽는 걸 보게 된다면, 그가 남긴 고기를 먹을 것이다. 몹시 질기고 맛이 없겠지만, 그가 남긴 고기를 한 점도 낭비하지 않고 꼭꼭 씹어 먹을 것이다. 소와 함께 했던 많은 추억이 내가 삼킨 살점과 함께 내 속으로 들어가 머무는 걸 느낄 것이다. 


아직 내게 소는커녕 송아지 한 마리도 없지만, 소가 있는 삶을 상상해 보는 건 멋진 일이다. 갑자기 소라도 한 마리 생기지 않고는 다람쥐 쳇바퀴 굴리듯 굴러가는 삶을 변화시킬 힘이 없다. 불쑥 소 한 마리가 생겨 삶에 큰 변화를 주길 은근히 바라게 된다. 


소가 있는 삶, 

이 짧은 시간 상상해 본 것만으로도 충분히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정말 멋진 삶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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