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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Feb 12. 2022

남의 일기 읽고 화내지 말고 내 일기를 쓰자

견딜 수 없이 화가 날 때

어느 소설가의 에세이를 읽었다. 작가의 말에 '일기'의 일부를 책으로 낸다고 적혀 있다. 얼마 전 읽은 다른 소설가의 산문집 제목이 '일기'이기도 했고, 에세이란 어느 정도 '일기'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니 문제 될 건 없어 보였다. 자신의 글 중에 '일기'가 가장 재미있다고 당당하게 밝히고 있어 흥미를 느꼈다. 그의 소설은 등단작인 장편소설 한 편과 문학상 수상집에 실린 단편 한 편을 본 게 전부다. 두 소설 다 재미있게 읽었기에 최근에 묶은 단편집과 산문집을 함께 샀다. 


잠자리에 들기 전 가볍게 읽을 생각으로 산문집을 먼저 집어 들었는데, 기대와 달리 읽다 보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잠자리, 생리 이야기 등 내밀한 이야기와 욕설이 가감 없이 등장하는 걸 보니 일기가 분명하지만, 모두에게 공개하는 일기를 더 이상 '일기'라고 부를 수 있을까. 도대체 어느 포인트가 재밌는 건지, 어떤 지점이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며칠 전 어떤 단체에서 독서 모임을 처음 갖게 되었다.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만한 에세이를 고르고 골라 함께 읽었는데, 다양한 반응이 나왔다. 그중에는 왜 내가 남의 사생활 이야기를 읽고 있어야 하는지, 도무지 공감을 못하겠다는 반응도 있었다. 내 생각과 다른 것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유연한 태도가 아닌가 속으로 생각했다. 며칠 후 내가 다른 에세이를 읽으며 똑같은 반응을 보일 거라는 건 짐작도 못한 채...


'아무 말 대잔치'라도 관계없이 그는 일기를 계속 쓰고 있다. 꾸준히 쓰고 있기에 소설가가 될 수 있었고, 출간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내가 화가 난 건 그가 시시콜콜한 일들을 일기에 쓰고 그걸 출간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건 전적으로 그의 자유고, 그 일기를 읽고 좋아할 독자들이 분명 있을 테니까. 내가 견딜 수 없이 화가 난 건 그런 시답지 않은 이야기조차 쓰지 못하고 있는 나 자신 때문이다. 매일 새벽 완전히 몰입한 채 두 시간씩 꼬박꼬박 글을 쓰던 시절을 마냥 그리워하면서, 실제로는 꼼짝도 하지 않는 나에게.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스케줄을 만들며 글쓰기만은 요리조리 회피하고 있는 나 자신에게.


나 자신에게 견딜 수 없이 화가 날 때, 스스로의 지질함에 넌더리가 날 때, 나를 도무지 좋아할 수 없을 때... 그때가 바로 일기를 써야 할 때가 아닐까. 많은 소설가가 소설을 쓰지 못할 때 일기를 썼다고 밝히고 있다. 글을 쓰지 못하고 있다면 지금이 바로 일기를 써야 할 때다. 견딜 수 없이 화가 난다면 일기를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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