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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Feb 18. 2022

타인의 시선, 나를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는!

'함성 독서실'에 들어간 후

온라인으로 함께 공부하는 유튜브 라이브 '독서실'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 공부를 그냥 혼자 하면 되지, 굳이 온라인으로까지 함께 해야 되나. 그랬던 내가 새벽에 줌(Zoom)으로 함께 하는 독서실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새벽 4시 (한국 기준 5시)부터 1시간 줌으로 들어가, 오디오를 끈 채 자기 자신을 위해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된다. 글을 쓰거나 공부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필사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있다. 입장할 때 인사조차 하지 않는데, 그게 좋았다. 귀한 새벽 시간을 전혀 방해받지 않으면서, 오히려 흩어지기 쉬운 내 시간을 그러모을 수 있다는 점에서. 


대부분의 사람보다 훨씬 일찍 일어나는 편인데도, 요즘은 새벽 시간마저 파도에 휩쓸려가는 모래처럼 금세 흩어지곤 한다. 새벽 5시면 아이들과 함께 하는 가정예배나 아침 식사 등 바쁜 일정이 시작되기에 내게 주어지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길지 않은 그 시간마저 해야 할 다른 일이 수시로 떠올라 방해받기 십상이다. 농담처럼 '나도 비서가 필요해'라는 말을 자주 한다. 맡은 역할이 많아지면서, 큼직한 일보다 그에 따라오는 사소하지만 챙겨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본업인 글쓰기도 방해를 받고, 유일하게 오롯이 혼자 누리던 새벽 시간마저 흩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온라인 독서실에 들어가니 최소한 그 한 시간만큼은 내 것으로 누릴 수 있었다. 내 모습이 카메라를 통해 보인다고 생각하니,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앉아 집중할 수 있던 것이다. 다들 자기 일 하느라 내가 글 쓰는 모습을 보는 사람은 실제로 없을 텐데도, 그 가상의 '시선'이 나를 붙들어 준다.


보통 '타인의 시선' 하면, 공동체 규범과 틀에 나를 끼워 맞추려는 억지스러움과 자유 없음, 남들이 세워놓은 기준에 맞춰 스스로를 비난 정죄하는 일 등이 떠오른다. 하나같이 부정적인 이미지다. 하지만 온라인 독서실의 시선은 달랐다. 오히려 사소하고 시시한 수많은 일들로부터 내 시간과 자유를 오롯이 지켜 주었다. '내가 함께 해줄게' '내가 응원하고 있어' 하는 소리 없는 지지와 격려의 시선이 나를 붙들어 주는 것이다.


일레인 사이올리노는 <프랑스 남자들은 뒷모습에 주목한다>에서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가 당신을 보고 있다면 걸음걸이부터 달라질걸요. 내가 미국에서 그리워한 게 바로 그거예요. ‘눈길’이오. 미국 여자들이 살찐 건 그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인정과 경탄이 담긴 시선은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끌어올려주기도 한다. 


'시선'이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가 되는 건 시선에 담긴 비난이나 정죄, 시기나 질투였을 뿐. 


오랜만에 자정 넘어까지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와 피곤했음에도 설레는 마음으로 4시에 독서실 줌을 켤 수 있었다. 비록 온라인이지만 내가 던지는 격려와 응원의 시선이 누군가의 의지를 북돋워주고 포기하려던 꿈을 이루게 도울 수 있을 테니까. 






('함성 독서실' 문의는 instagram: @gritj_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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