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소희 Jan 03. 2023

에세이 쓰는 게 무서워졌다

날것의 경험에 대한 소유권 주장은 유효한가

소설, 에세이, 시 등 문학 작품뿐 아니라 미술, 건축, 음악 등 모든 작품에는 저작권이라는 게 엄연히 있다. 저자 또는 예술가가 이미 작품에 사용한 문장이나 아이디어를 허락도 없이 마음대로 가져다 쓰는 건 불법이다.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굵직한 표절 사건들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작품이 되지 않은 날것의 재료, 즉 경험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한다면? 함께 공유했던 경험이니 허락 없이 작가가 마음대로 글에 담거나 예술가가 작품을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고 고집을 피운다면?


나는 세 권의 에세이를 출간한 에세이 작가다. 하지만 작년에 세 번째 책을 출간한 이후 에세이를 쓰지 못하고 있다. 책을 읽은 가까운 지인 하나가 자신과의 경험을 소재로 글을 썼다는 이유로 비난을 퍼부었기 때문이다. 다시는 자신도 자신과 함께 했던 경험도 내 글에 쓰지 말라고 단단히 못을 박았다. 그가 화를 내며 내리친 그 못은 내 가슴에 깊숙이 박혀버렸다. 차라리 표절 논란이었다면 바로 반성하고 겸허하게 벌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납득할 수 없는 비난의 말은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겼고, 나는 에세이 쓰는 게 무서워졌다. 그의 말 한마디는 달리기 선수의 발을 걸어 다리를 부러뜨려 놓은 것과 맞먹는 일이었다.


그가 문제 삼은 짧은 글의 주제는 그 지인과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 지인의 이름이 나온 것도 아니었다. 독자들이 전혀 주목하지 않을 배경에 불과했다. 그것도 그림자처럼 흐린 배경.


책에 누군가의 이야기를 써서 명예훼손 죄가 성립되려면, 그 글을 통해 다수가 등장인물이 누구인지 인지할 수 있는 상황에서 기록된 사실 또는 허위 사실 때문에 그 인물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거나 그럴 위험이 있어야 한다. 그 지인과 그 가족을 제외하면 그 글에 등장한 이가 누구인지 알아챌 독자는 없었다. 더구나 글을 정확히 독해할 수 있는 독자라면 그 글에서 그가 부정적인 이미지로 등장한 것도 아니란 걸 금세 알 수 있다.


100% 사실인 에세이도 없고, 100% 허구인 소설도 없다. 그 어떤 글이든 사실과 허구 사이의 스펙트럼 어딘가에 존재한다. 하지만 에세이는 사실로 받아들여지기에 글 쓰는 이에게 당연히 부담이 있다.  허구를 얼마나 허용할 수 있을까, 소재로 사용될 경험은 어느 정도까지 가공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묻는다. 하지만 날것의 재료 자체를 모두 빼앗고 쓰지 못하게 한다면, 작가는 어떻게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마치 요리사에게 자기 허벅지 살을 베어 쇠고기 대신 사용하고, 땀을 말려 소금을 얻어 간을 하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 요리 재료로 자기 살만 베어 쓸 수 있다면, 요리사 역시 요리하는 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일이라 여기겠지? 

매거진의 이전글 타인의 시선, 나를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