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철학> - 함돈균
어제 낮에만 해도 반팔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오늘 오후 베이징에는 눈이 내립니다.
겨울이 다 가지도, 봄이 완전히 오지도 않은 시간.
요맘때가 되면 시샘 많은 바람에게 종종 매섭게 얻어맞기도 하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살랑살랑 풀려 나옵니다.
꽁꽁 얼었던 땅이 녹고 겨우내 말라있던 나뭇가지들이 물을 끌어올리며 팽팽히 차오르는 시간.
봄비 대신 봄눈이 내리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책에 있는 글귀를 다시 한번 입 속에서 굴려 봅니다.
왜 '첫비'는 없는데 '첫눈'은 있는가?
잠깐 사이에 사라지죠.
눈의 찰나적 이미지는 설렘과 동시에 망각의 안타까움을 동반한다. 그런 점에서 모든 눈은 '눈을 뜨면 사라지는' 첫눈이다. 눈은 공중에 날려 땅으로 떨어진다는 점에서 공간적 경험을 선사하지만, 순간적으로 출현했다가 다시는 존재하지 않는 덧없음을 환기한다는 점에서는 시간적이다. 그해의 첫눈은 두 번 반복되지 않는 무엇, 다름 아닌 '시간'이라는 존재 체험을 우리도 모르게 선사하는 것이다.
함돈균 <순간의 철학> 중
책에서 눈을 잠시 떼고 창밖을 봅니다.
눈은 정말 잠깐 사이에 사라지네요.
겨울이 떠나기 전, 마지막 인사를 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를 기억해 주겠니, 하고 물으면서요.
망각은 존재를 미래에조차 부재하게 하지만, 기억은 사라진 존재의 과거조차 되살려낸다는 사실의 환기 말이다. 그것은 기억이 부활 메커니즘의 핵이라는 뜻이다.
함돈균 <순간의 철학> 중
"영원한 것은 없다.
그러나 영원은 찰나에 깃들어 있기도 하다.
시인은 그것을 본다."
함돈균 <순간의 철학> 중
봄바람에 실려 살랑살랑 춤을 추다 땅에 닿자마자 녹아 사라지는 눈.
그걸 보는 순간,
오고 있는 봄과 가고 있는 겨울을 봅니다.
아니, 사계절이 동시에 보입니다.
지금 계신 곳의 날씨는 어떤가요?
당신은 어느 계절을 살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