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타너스가 늘어선 헝산루의 아기자기한 골목을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잎이 무성할 때든 모든 잎을 떨군 때든.
가로수길이 좋아 찾아갔음에도 아직 거리를 걷지는 못한다. 여기까지 혼자 힘으로 나오는데 반년이 걸렸으니, 조금은 더 기다려줘야 한다. 가로수길에 눈도장을 찍고 얼른 한 뼘 짜리 정원으로 숨어들었다. 一尺花园, 이름만큼 작지는 않지만 아담한 정원이 있어 강아지나 어린아이와 온 손님들이 주로 밖에 앉아 있었다. 크기가 작은 생명들이 내는 크고 작은 소리 덕에 혼자서도 잠시 머물다 나올 수 있었다. 소리가 없는 나는 그림자처럼 분명 있었지만 눈에 띄지 않는다. 一尺, 한 걸음, 한 뼘... 이런 작은 단위들이 좋다. 아주 작은 걸음 하나라면 떼어볼 만하다.
그림자가 많은 날
-장옥관
해를 등지고 앉은 페이지 위로 그림자 하나 휙, 지나갔다 획, 뭔지 모를 그것이 사라지고
그림자의 그림자만 남아 내 속에 맴돈다
그래, 무엇이 지나갔다 해와 나 사이에 무언가가 지나갔다 미신처럼 귀신처럼 무언가 잠시 머물다가 사라졌다
있었는데 분명 있었는데 이미 사라지고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