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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Jan 20. 2023

나는 새로운 이웃이 미워졌다

발정과 광기에 대한 질투와 허기

요망한 울음소리에 잠에서 깼다. 휴대폰을 더듬어 시간을 확인하니 새벽 1시가 조금 넘은 시각. 무슨 일이지? 몸을 일으키지도 눈을 뜨지도 못한 채 온 신경을 귀에 집중했다. 갓난아이의 울음소리라고 하기에는 노련하다 못해 닳고 닳은 느낌이 묻어 있는데, 그 부조화가 자꾸 신경을 건드렸다. 발정 난 고양이의 애타게 구애하는 소리일 거라 짐작했지만, 거머리처럼 들러붙는 끈적끈적한 소리에 소름이 끼쳤다. 빨리 짝을 만나 사랑을 나누란 말이야, 신경질적으로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그러자 이번에는 전혀 다른 소리들이 들려왔다. 죽기 살기로 싸움질하는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귓전을 물어뜯고 할퀴었다. 단단한 벽 밖에서 일어나는 일임에도 그 자리에 그대로 노출된 것처럼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발정과 광란의 밤은 갔다. 아침이 오자 창밖에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잠을 설쳐 약간 몽롱한 기분이 들어 햇빛을 들이려고 커튼을 열어젖혔다. 그 순간 나의 이웃을 보고 말았다. 우리 집 현관 앞에 철퍼덕 엉덩이를 깔고 앉아 눈을 반쯤 감은 채 나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웃. 발정과 광기, 포악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권태로움마저 느껴지는 몸짓을 보고 얼른 커튼을 닫았다. 눈이 마주칠까 두려웠다. 


고양이는 그저 본능에 충실해 어둠을 가르며 짝을 찾기 위해 울었다.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연적을 물리치기 위해 털을 빳빳이 세웠을 것이다. 불필요한 싸움을 최대한 피하려는 고양이의 습성을 볼 때 생존이나 번식을 위협하는 큰일을 겪었기에 그토록 날카롭게 할퀴고 물어뜯었을 것이다. 적나라한 색기와 표독스러운 소리가 귀에 거슬리고 소름 끼치게 싫은 건 왜였을까. 단순히 내 단잠을 방해했기 때문일까. 


질투와 허기 때문이다. 한밤중에 온 동네 사람들을 깨울 만큼 큰 소리로 울어댈 간절함이 내게는 없으니까. 문명인으로서 갖춰야 할 세련된 매너와 예의범절은 매끈한 포장지고, 위선과 가식은 포장지를 둘러싼 화려한 리본이다. 본능은 껍데기에 가려 보이지 않은 지 오래고, 야성은 이미 절멸되었다. 절실한 뭔가를 지키기 위해 죽기 살기로 싸울 용기도 없다. 호기심을 갖고 다정한 눈으로 바라봤던 새로운 이웃이 갑자기 미워졌다. 


더 얄미운 건 어둠과 빛을 정확히 가르는 절도일 것이다. 아침 햇빛에 어둠이 밀려나자, 더 이상 광란은 없었다. 뭔가에 매달리거나 골똘해 본 적도 없다는 듯 눈을 반쯤 감고 졸고 있다. 게다가 자기는 이웃이 아니라 집주인이라도 된다는 듯 현관문 앞을 떡하니 가로막고 앉아 있다. 시기의 발톱이 쓰린 속을 할퀸다. 그 날카로운 발톱이 불필요하게 덕지덕지 붙여 놓은 리본과 포장지를 부디 다 찢어발겨 주기를. 커튼을 잠시 열고 그런 간절한 마음을 담아 눈빛을 보냈으나, 그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눈을 감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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