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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Jan 06. 2023

나는 새로운 이웃이 좋아졌다

적당히 도도하고 고정관념을 확 깨는 의외성

준비 없이 급작스럽게 맞닥뜨린 중국의 '위드 코로나'로 9년 만에 살던 도시를 옮겼지만 몹시 조용했다. 소리 없이 베이징을 떠났고, 상하이에 살금살금 짐을 풀었다. 죄 지은 것도 없는데 야반도주라도 하는 것처럼. 이사온 지 3주가 되어 가는 데도 이 넓은 단지에 누가 사는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 


결혼 후만 따져도 이사를 열 번 이상 했는데, 이웃에게 시루떡을 돌린 적은 없었다. 붉은색이 액운을 쫓는다는 미신을 믿지 않아서도 아니었고, 해외에 사니 시루떡 돌리는 풍습이 없다는 핑계 때문도 아니었다. 네 식구 모두의 MBTI 첫 글자가 'I'다. 나뿐 아니라 식구들 모두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낯선 이에게 먼저 말 거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한 번은 이사 후 큰맘 먹고 시루떡은 아니지만, 중국인도 좋아할 만한 먹을거리를 준비해 초인종을 누른 적이 있었다. 앞집에 사는 사람이라는 말에 문을 조금 열고 내다보던 이웃의 그 눈빛을 잊을 수 없다. 도대체 무슨 말썽이라도 났나, 하며 슬쩍 밖을 내다보던 의심의 눈초를. 물론 잘 지내자고 먹을 것을 건넬 때 고맙다고 받기도 하고, 며칠 뒤 그걸 갚기 위해 다른 먹을거리를 우리 집에 보내 주었지만 그뿐이었다. 생판 모르고 지내던 낯선 이들이 앞집에 산다고 갑자기 친해지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많은 시대다.


상하이로 이사 온 후 우리 집에 제일 먼저 찾아와 인사한 이웃이 있었다. 물론 내게 인사를 건 건 아니었지만, 내가 들인 새로운 식구들을 알아봐 주고 인사를 건네 주어 반가웠다. 큰맘 먹고 키워도 식물을 잘 키우지 못하는 편인 내가 로즈메리와 민트 화분을 산 다음 날 아침이었다. 통풍이 좋은 곳에 내놔야 한대서 거실 유리문을 열고 밖에다 화분을 잠시 내놓았을 때였다. 거실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가 고개를 문득 들었을 때 이웃을 처음 보았다. 이웃은 살금살금 다가와 로즈메리 화분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내가 큰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깜짝 놀라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달아날 포즈를 취하고 잠시 멈춰 있었다. 내가 손을 크게 흔들자 이웃은 뒤로 돌아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그 후로 이웃이 우리 집 뒷마당까지 들어오는 모습은 보지 못했지만, 산책을 할 때 집 근처에서 자주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서두르지 않고 언제나 느릿느릿 걷는 이웃. 이미 이곳에 터를 잡고 오래 산 자의 여유가 느껴졌다. 


나른한 오후, 뒷마당에 있는 의자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바람이 머리카락을 살살 어루만지듯 불었다. 마당 앞쪽으로 흐르는 작은 시냇물을 바라보며 바람의 냄새를 맡고 있었다. 그때 이웃이 시내 건너편을 천천히 걷고 있는 게 보였다. 나는 이제 이웃이 깜짝 놀라는 걸 싫어하고, 시끄러운 소리나, 급작스러운 행동 변화를 싫어한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이웃의 언어는 알지 못해, 마치 미국인에게 콩글리시로 인사를 건네듯 '냐옹'하는 소리를 냈다. 이웃이 발걸음을 멈추고 내 쪽을 바라보았다. 나는 지난번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꼼짝도 하지 않고 은은한 눈길로 이웃을 바라보기만 했다. 이웃은 지난번처럼 달아나지 않고 한참 동안 나와 눈을 맞춘 뒤 천천히 가던 길을 갔다. 조금은 친해진 느낌이었다.


이웃에게 조금이라도 배려하고 싶은 마음에 정보를 찾아보다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고양이가 싫어하는 냄새 중 로즈메리 등 허브 냄새가 있던 것이다. 이웃은 어떻게 로즈메리 화분에 다가와 냄새를 맡아볼 생각을 했을까. 나의 이웃은 적당히 도도하고, 상대에게 관심을 가져도 상대와 맞춤한 거리를 잘 유지한다. 설사 위험하고 싫은 것일지라도 새로운 것에 대한 이웃의 호기심을 막을 순 없다. 고양이는 다 그렇다고 누가 그래? 고정관념과 틀을 확 깨버리는 의외성. 나는 새로운 이웃이 좋아졌다. 새로운 집에서의 삶이 이웃 덕분에 좀 더 흥미진진해졌다.


https://brunch.co.kr/@yoonsohee0316/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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