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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Feb 24. 2023

나는 새로운 이웃이 좋아졌다 2

땅에 붙어살면 좋은 점

땅에 붙어사는 게 좋다. 내 창 밖으로 동방명주*나 세기공원**이 보이는 것보다 나무 한 그루가 보이는 게 훨씬 좋다. 여유롭게 산책하는 길고양이를 훔쳐보는 것도 좋고. 물론 창밖을 지나가는 사람들도 창 너머로 집안에 있는 나를 볼 수 있다. 그 때문에 얇은 커튼을 쳐놓긴 하지만, 가까이서 누군가의 발자취와 오고 감을 느낄 수 있다는 건 꽤 다정하다.


한때는 고층에 있는 집만 고집한 적도 있었다. 집을 보러 다닐 때 20층 이상만 찾았다. 더 높이 올라가 더 많은 걸 바라보고 싶었다. 커다란 공원이 손바닥만 하게 보이고, 루자주이***에 있는 유명 고층건물들을 집안 창가에서 볼 수 있는 게 좋았다. 마치 바라보기만 하면 그 모든 걸 손에 쥘 수 있을 것처럼 느꼈던 건 젊은이 주는 기분 좋은 착각이었다.


땅과 가까이 살면서 좋은 점 중 하나는 아침에 새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다섯 시쯤이나 되어야 새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는데, 오늘은 새벽 네 시부터 새들이 지저귀기 시작했다. 해가 길어지니 새들도 점점 부지런해지는 모양이다. 식구들과 아침을 먹는 분주한 시간이 시작되기 전, 오롯이 혼자 누리던 새벽의 고요가 산뜻하게 깨졌다. 침범당했다는 느낌보다는 사이좋게 나눠 갖는 것 같아 상쾌하다.


해가 뜨려면 아직 멀었는데, 캄캄한 새벽에 새들은 뭘 하는 걸까. 내 눈에는 아직 보이지 않는 빛을 벌써 감지한 걸까. 지평선 너머에서 세수하고 몸단장하며 출근 준비를 하는 해가 뿜어내는 빛의 기운마저 알아챈 모양이다. 잠시 눈을 감았다. 책들이 어지럽게 쌓여있는 작은 책상 앞에 앉아 있던 내가 어느새 나무 밑으로 가 있다. 나뭇가지 사이사이를 가볍게 날면서 종알대는 작은 새들을 본다. 먼동이 희붐하게 밝아오는 걸 볼 수 있는 밝은 눈과 땅에서 발을 가볍게 들어 올릴 수 있는 날개를 빌려달라고 새들에게 졸라 본다. 




*중국 상하이 푸동신구에 위치한 높이 468m의 송신탑. 랜트마크 중 하나

**상하이에서 가장 큰 생태형 공원

***상하이의 금융중심구로 100 개 이상의 대형 빌딩이 밀집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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