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필 작가의 비애
"이름이 오소리예요?"
울고 싶었다. 어딘가로 들어가 숨고 싶었다. 그럼에도 그냥 웃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가끔 내 책을 선물한다. 돈으로 환산하자면 100 위안 안팎일 뿐이지만, 가장 소중한 걸 건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나의 일부를 건네는 건 기쁘지만, 사인을 하는 일은 여전히 어색하고 힘들다. 펜이 한 바탕 춤을 춘 듯 멋들어진 사인에 인상적인 글귀까지 적는 작가들의 사인을 보면 언제나 기가 죽는다. 글귀는커녕 이름이나 날짜조차 쓰고 싶지 않을 때가 많다. 못생긴 글씨를 한 자라도 줄이고 싶어서.
글씨를 못 쓰게 된 건 펜을 잡는 법부터 잘못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연필도 젓가락도 내 멋대로 엉터리로 잡는다. 바르게 잡는 법을 이제 알지만, 너무 늦었다. 오랜 시간 손에 굳은 습관을 바꿀 도리가 없다. 젓가락을 바르게 잡고는 아무것도 먹을 수 없고, 연필을 바르게 잡고는 한 자 쓰기도 버겁다. 한번 잘못 잡은 연필에서 시작된 악순환, 시간이 흐를수록 내 글씨는 점점 더 알아보기 힘들어졌다. 아니 글씨체의 악화는 현재도 진행형이다.
타이핑을 할 때보다 손글씨를 쓸 때 훨씬 더 영감이 잘 떠오른다는 조언을 들었음에도 타이핑을 고집한다. 떠오르는 생각들을 손으로 적을 땐 좋지만, 하루이틀만 지나도 그게 무슨 생각이었는지 알 도리가 없다. 워낙 악필이라 내가 적어 놓고도 내 글씨를 못 알아보는 것이다. (세상에서 내 글씨를 가장 잘 알아보는 사람은 남편. 이것은 사랑의 힘일까.) 알아볼 수 없는 기록은 기록으로서 의미가 없다.
처음 사인을 만들었을 때, 멋진 사인은 꿈도 꾸지 않았다. 흉내 내어 쓸 수 없으니까. 그저 조금이라도 사인처럼 보이기를, 내가 반복해서 쓸 수 있기만 바랐을 뿐이다. 딱히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몇 년째 같은 사인을 고수하고 있다. 새로운 글씨체를 연습할 자신이 없어서.
"제가 악필이에요."
사인을 할 때마다 손이 부끄러워 늘 기대치를 낮추기 위한 말 한마디를 잊지 않는다. 그럼에도 '오소리'라니. 윤소희, 겨우 세 글자 쓴 건데, 단 한 글자만 알아본 셈이다. 괜히 부모 탓을 해본다. 성이 '윤'이 아니라 '오'였으면, 아예 이름도 '소희'말고 '소리'라고 지어 주시지.
'오소리'라고 쓴 거냐는 질문을 처음 받은 것도 아니었다. 한 번이라면 여러 가지 이유를 붙여 웃어넘길 수 있지만, 두 번 이상이라면?
이참에 필명을 '오소리'로 바꿔야 할까. 아니면 사인을 대필해야 하는 걸까. 껍데기가 못났다고 알맹이도 못난 건 아니랍니다, 악필 작가의 간절한 호소는 오늘도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