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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툴루즈, 먼 이국 땅에 있는 내 감나무

역시 재능은 문제가 아니었다

by 윤소희
소희야, 너의 감나무 사연이 절절하구나. 우리 집 감나무 입양할래? 우리 집 앞마당에 감나무 있던 것 생각나지?


멀리 프랑스 툴루즈에 사는 친구에게서 카톡이 왔다. 아마 며칠 전에 올린 '왜 하필 포멜로 나무?'라는 글을 읽은 모양이었다. 친구는 그 글을 읽자마자 "그냥 네 나무라고 해"하며 감나무를 내게 주었다.


WechatIMG2600.jpeg 프랑스 툴루즈 친구 집 앞마당에 있는 감나무


우리 언니도 아직 우리 집 안 와봤는데, 이 멀리까지 와줘서 고마워.


거의 20년 만에 연락된 친구의 "놀러 와"라는 한 마디를 붙들고, 친구 집에 정말 나타났을 때 친구가 했던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나 역시 삶의 거의 절반을 타국에서 살았지만, 몇 년을 제외하고는 교민들이 많은 도시에 살았기에 큰맘 먹지 않아도 한국 음식을 먹고, 한국 문화를 접하며 한국 사람을 실컷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친구는 불어를 한 마디도 못 할 때 프랑스 남자와 결혼해 툴루즈에서 지금까지 살았다. 여전히 치즈를 잘 먹지 못하는 '한국 토박이' 식성이니 타국 생활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거 알아? 무궁화는 저녁이 되면 꽃잎이 오므라들며 졌다가 아침이 되면 다시 활짝 핀다.

친구 집 마당에서 무궁화를 발견했을 때 친구가 해준 말이다. 그 집에 이사 가자마자 심었다고 했으니, 감나무를 심었을 때 친구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짐작해 볼 수 있다. 어릴 적 동네에서 자주 보았던 감나무를 매일 보고 싶었을 것이다. 한복 입은 인형들, 벽에 걸린 수묵화, 다른 가구들과 어울리지 않는 한국 고가구들, 쌀독 등 집안 곳곳에 고향을 그리워하는 친구의 마음이 묻어 있었다. 그렇게 아끼는 감나무를 내게 선뜻 내어준 것이다.


WechatIMG2599.jpeg 프랑스 툴루즈에 있는 '내^^' 감나무네 꽃봉오리가 맺혔다
감나무 사진 철철이 보내줄게.
지금은 봉오리가 생겨났고, 조금 있으면 꽃이 필 거야.

사실 우리 집 마당에 있는 포멜로 나무는 내게 과분하다. 맛없어 버려지는 포멜로에 내 재능을 슬쩍 빗대어 쓴 글 덕분에 여기저기서 많은 위로를 받았다. 시큼한 포멜로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다양한 레시피가 있고, 그저 귀찮다고만 생각했던 포멜로 껍질 벗기기가 재미있는 놀이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게다가 멀리 툴루즈에 서 있는 늘씬한 감나무가 내 것이 되었다.


조금 있으면 감꽃이 피고, 가을이 되면 감이 열리겠지. 우리 집 포멜로 나무든 툴루즈의 감나무든, 역시 재능은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차갑게 식어갈 때도 여기저기서 보내주는 따스한 온기에 힘입어 어떤 나무든 관계없이 나만의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 같다. 못생겨도 괜찮고, 좀 시어도 좋다. 나 혼자의 열매가 아니라 나를 아끼는 이들과 함께 맺은 열매니까.


https://brunch.co.kr/@yoonsohee0316/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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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있는 프랑스로 놀러갔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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