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잔인한 일은 혼잣말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일은 혼잣말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
박주영 판사가 울산에서 발생한 3인 자살미수사건의 판결문 말미에 썼던 문장이다. 이 문장은 그가 아내의 말을 자꾸 흘려듣고 아내에게 상처 주었던 걸 반성하며 적어두었던 메모에서 옮겨 적은 문장이었다. 이 문장은 해당 사건의 피고인들뿐 아니라 혼잣말을 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렸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말, 혼잣말을 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이해받지 못하는 외로움이 자신을 어떻게 죽이는지.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은 순간, 감격해서 우는 환자들이 있다고 한다. 아무리 고통을 호소해도 그 누구도 인정해 주지 않았는데, 자신의 고통에 이름을 붙여주니 마음이 녹아내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때로는 고통 자체보다 이해받지 못하는 외로움이 더 크다.
이제 막 열네 살, 열다섯 살이 된 아이들이 있다. 그 나이 때쯤 내 일기장에는 이해받지 못하는 외로움이 그득 담긴 문장들이 난무했다.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가면을 여러 겹 쓰고, 그 안에 꽁꽁 숨었다. 아무도 보지 못하도록 자신을 숨기면서도 누군가는 부디 알아봐 줬으면 하는 양극의 모순이 함께 존재했었다.
내 아이들이 혼잣말하도록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말, 나보다 좀 더 앞서 산 누군가가 들어주면 좋을 그런 말들을 아이들이 맘 놓고 꺼낼 수 있는 상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작정하고 들으려는 사람에게 비밀을 털어놓고 싶지는 않은 법. 귀를 활짝 열어놓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걸 노골적으로 드러내서는 안 된다. 비밀을 끄집어내어 보여준다는 건 자신의 피부를 열어 그 속을 보여주는 것처럼 끔찍한 통증을 수반하는 일이니까.
나는 오늘도 귀를 활짝 열어놓았다. 그 귀에는 아이들의 고백이 아니라 내가 중얼거린 혼잣말만 들려온다. 어느 누구에게도 꺼내지 못한 말들, 그 누구도 귀담아 들어주지 않는 말들.
혼잣말도 해본 사람이 잘 들어줄 수 있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