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안 시킨 엄마의 두려움
열네 살, 열다섯 살 된 아들이 있다. 보통 한국 아이들답지 않게 지금까지 학원 한 번 가보지 않고 자랐다. 빵점자리 시험지도 아무 걱정 없이 손에 들고 흔들며 집에 들어올 수 있을 정도로, 아이들에게 성적으로 스트레스를 준 적이 없었다. 심지어 숙제를 안 해도, 조언만 할 뿐 그 일로 야단친 적은 없었다. 여름방학이면 한 달씩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떠나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고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 수 있게 했다. 패밀리 밴드를 결성해 온 가족이 함께 연주하며 때때로 즐거워했다. 가끔은 이렇게 자라는 아이들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대학입시가 2,3년 앞으로 다가오면서 문제가 조금씩 비치기 시작했다. 불안한 마음에 잔소리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걱정되면 남들처럼 사교육을 시키면 될 텐데, 그것도 해본 사람들에게나 쉬운 일이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사람에게는 다른 행성의 일처럼 낯설기만 하다. 그럼 아이들을 믿고 끝까지 맡겨야 하는데, 그러지도 못하고 있다.
너희가 미래에 대한 확고한 생각이 있어서 대학에 가지 않겠다고 한다면, 엄마는 그것'도' 지지해 줄 수 있어. '그런데' 좋은 대학을 나오면 인생이 '좀 더 쉽고 편해'지는 건 사실이야.
그동안 유지해 왔던 나의 교육관을 담아 말을 시작한다. 하지만 곧 '그래도 학벌이 중요하지 않을까'하며 세상의 관점으로 은근슬쩍 넘어가며 아이들의 생각을 떠본다. 점점 더 '너를 지지해'는 짧아지고, '좋은 학벌을 위해 노력해 보자' 쪽이 길어진다.
입시에 대한 확실한 정보력을 갖추고 사교육으로 뒷받침해 주며 아이들의 입시 준비를 제대로 밀어주든가. 그것도 아니면서 이제 와서 갑자기 '좋은 대학' 운운하며 잔소리만 하고 있으니, 아이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나는 내가 생각해도 정말 밥맛 없는 엄마가 되어가고 있다.
여전히 나는 대학이나 학벌이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학벌이 좋으면 여러 가지 혜택이 있음은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그게 전부가 아니란 걸 잘 안다. 공부도 자신이 원할 때 원하는 방식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기에, 꼭 지금이 아니어도 된다고 믿는다. 아이들이 대입에 실패하거나, 학벌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 고생을 좀 한다 해도 그것마저 아이의 삶에서 귀한 자산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나는 두렵다. 솔직히 아이들의 대학 입시 결과가 좋지 않을 때, 사람들이 던질 조롱이 무섭다.
학원 안 보내고 잘난 척하더니 꼴좋다.
나는 잘난 척한 적이 없는데도 잘난 척하다 망신당한 케이스가 될 것이고, 아이들을 좋은 대학 보내는 게 목표가 아니었음에도 루저가 될 것이다. 남의 시선 같은 거 하나도 안 중요하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나는 두렵다. '공부 안 시켰어요'하는 교육서들의 결론조차 항상 '그럼에도 좋은 대학 갔어요'니까.
어른인 나도 이렇게 두려워하는데, 아이들이 앞으로 홀로 겪어내야 할 세상은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다. 세상을 향해 발걸음을 떼는 아이들 곁에서, 흔들리지 않는 지지자가 되어줄 누군가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간이 콩알만 한 겁쟁이 엄마지만, 아이들 곁에서 아이들의 선택을 최대한 존중하고 지지해 주는 엄마이고 싶다. '대학 같은 거 안 가요'라는 말도 지지해 줄 수 있고, '좋은 대학 가고 싶으니, 학원 보내 주세요'라는 말을 들어도 협조해 주는.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부모가 아이에게 해주는 모든 지원은 결국 아이를 위한 것이니까.
밥맛 없는 엄마가 되지 않으려면, 내 작은 간부터 좀 키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