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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포멜로 나무?

나는 감나무를 가지고 싶었다.

by 윤소희

새로 이사 온 집에 손바닥만 한 마당이 있다. 마당에 들어서자 귀퉁이에 선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띄었다. 내 것은 아니지만 매일 얼굴을 맞대고 인사할 수 있는, 우리 집 나무. 몇 년 전 전라도 지역을 여행하다 문득 생긴 내 나무를 갖고 싶다는 꿈을 일부는 이룬 셈이었다. 무슨 나무일까. 식물에 무지한 나는 나무 위를 올려다보며 그의 이름을 궁금해했다.


날이 풀리고 따뜻해지자, 나무는 그제야 명함 한 장 건네듯 열매 하나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핸드볼 크기의 노란 열매를 가르자 시큼한 흰색 과육이 나왔다. 중국에서 요우즈(柚子)라고 부르는 포멜로였다. 우리 집 나무는 감나무가 아니라 포멜로 나무였던 것이다.


WechatIMG2576.jpeg 우리 나무에서 떨어진 포멜로


마당에서 주워온 포멜로를 보고 도우미 아주머니는 내가 과일을 잘못 샀다며 당장 교환하라고 했다.

"이건 산 게 아니에요. 우리 집 나무에서 난 열매라고요."

나는 시든 과육 한 점 버리지 않고 포멜로 한 통을 말끔히 먹어치웠다.


아무리 아끼는 열매라도 모두 소화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시큼한 과일을 좋아하지 않는 식구들은 포멜로를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냉장고에는 먹기 좋게 잘라놓은 포멜로가 쌓여갔다. 우리 집에서 난 열매들은 결국 다 시들어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언제부턴가 마당에 떨어진 열매를 아예 집안으로 들이지 않게 되었다. 푸른 잔디밭에 떨어진 노란 열매를 마당의 장식물인 양 바라볼 뿐이었다.


지난 두어 달 우울감이 심했다. 겨우 손가락 염증이나 마음에 들지 않는 헤어스타일처럼 이유는 모두 사소했지만, 그로 인한 우울감은 많은 걸 놓아 버리게 했다. 손바닥만 한 마당에 잡초가 무성하게 자랐다. 무릎 위까지 올라온 풀도 많았다. 한 발자국도 들여놓을 수 없을 만큼 엉망이 되었다. 꼭 내 마음을 보는 것 같았다.


4개월 만에 잔디를 깎았다. 깔끔하게 머리칼을 자른 마당은 단정해졌다. 바닥 여기저기에 떨어진 포멜로 열매들이 다시 눈에 띄었다. 잡초가 무성할 때는 보이지 않았었다. 시간이 오래 지나자 열매는 햇볕을 받아 시들어가고, 갈색빛을 띠며 썩어가기도 했다.


사실 내가 갖고 싶던 건 감나무였다. 파란 가을 하늘에 매달린 붉은 감은 바라보기만 해도 좋을 것 같았다. 단감이나 홍시, 곶감 등 다양한 방법으로 오래도록 열매의 달콤함을 즐기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하필 포멜로 나무라니. 포멜로는 시큼한 맛 때문에 다수가 좋아하는 과일은 아니다. 더구나 껍질을 벗기는 과정이 몹시 귀찮은 과일이다. 우리 집 포멜로는 누군가에게 선물로 줄 만큼 과육이 탱탱하지도 않고 맛도 없다.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는 아까운 열매. 바닥에 뒹구는 포멜로를 바라보는데 마치 나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


다 시든 포멜로를 주워 마멀레이드라도 만들어야 하는 걸까. 눈 딱 감고 과감하게 쓰레기통에 던져 넣어야 하는 걸까. 그래도 누군가는 시큼한 포멜로를 좋아하지 않을까.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이러다 다시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 노란 열매들을 모두 덮어버릴지도 모른다. 그걸 바라는 지도.



WechatIMG2575.jpeg 마당에 나뒹구는 포멜로 열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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