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어어.. 선생님.. 어떡하죠? 손에 자꾸 땀이 나고 속이 메슥거려요.."
"아니, 선생님! 왜 이렇게 떨어요? 시험은 애들이 보는데!"
1학기 중간고사 첫날, 안색이 파리해진 학생들과 피로감에 찌든 학생들 사이로 하얗게 질린 선생님이 있다면 믿겠는가?
시험문제가 잘못된 것도 아니고, 자신이 시험을 보는 것도 아닌데, 하얗게 질린 채 뚝딱거리는 선생님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시험감독이 처음인 경우가 되시겠다.
1년을 선생님들과 함께 근무하면서 자부할 수 있게 된 것은, 선생님들의 눈에 정말 보기 희귀한 케이스가 바로 나라는 것이었다. 문득 생각하는 그 모든 것이 처음인, 완벽한 첫 초보교사. 그것이 나였으니까.
첫 부서 배정, 첫 업무, 첫 협의회, 첫 부서 회식, 첫 내부기안, 첫 41조 연수, 첫 피크닉, 첫 워크숍, 첫 송년회, 첫 술..
그리고 첫 '시험감독'.
사실 엄청나게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기본적인 매뉴얼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뚝딱이 초보교사에게 있어서 첫 시험감독은 가슴이 터질 만큼 긴장되는 일이었다.
더욱이 시험지 봉투에 써넣어야 하는 칸부터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재적? 결시? 결번? 이건 또 뭐야? 어떻게 써야 하지? 애들이 없는 자리에는 시험지와 답안지를 안 놓는 게 맞나? 중간에 화장실을 가고 싶다고 하면 어떡하지? 금속탐지기는 어떻게 쓰는 거지? 금속탐지기에서 소리가 나면 어떡하지? 중간에 갑자기 질문이 들어오면 어느 선생님께 연락드리면 되는 거지? 핸드폰이 울리거나 갑자기 돌발행동을 하는 학생이 있다면? 내 실수로 민원이라도 들어오면?
"선생님!! 저 너무 걱정돼요오오옥!!"
수도 없이 이어지는 물음표의 끝에 서서 절규하는 나를 구원해주신 분은 다름 아닌 기획 선생님이셨다. 빛나는 엘리트이시자 학교의 모든 선생님들이 인정하는 FM 그 자체, 빈틈없고 철두철미한 나의 롤모델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덤덤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걱정에 질려있는 나를 향해 자신 있게 말씀하셨다.
"자! 따라오세요. 이제부터 차근차근 다 알려드릴게요."
"시험지는 여기에서 가지고 갑니다. 보통은 미리 가지고 가야 시간에 쫓기지 않아요."
"시험지를 수령할 때는 반드시 한번 더 반을 확인하세요. 간혹 헷갈려서 다른 반 것을 들고 갈 수가 있으니까요."
"보통 시험 시작 5분 전에 배부를 시작 해야 하기 때문에 시험 시작 10분 전에는 반으로 출발하시는 게 좋아요. 우리가 몇 반이었죠? 맞아요. 그럼 가볼까요?"
"처음 도착해서는 보던 것들과 가방을 다 치우고, 핸드폰을 포함한 전자기기의 소지 여부를 반드시 확인하세요. 자, 얘들아. 이제 보던 거 다 집어넣고 전자기기도 다 꺼서 가방에 넣으세요."
"시험지는 반드시 아이들이 보는 곳에서 개봉하세요. 2, 3학년의 선택 과목인 경우 이렇게 명단표가 있는데, 이것은 시험 시작 전에 이름을 불러서 체크해도 되고, 시험 중간에 도장을 찍을 때 함께 체크하셔도 됩니다. 이건 선생님께서 한 번씩 해보시고 편하신 대로 하세요."
"빈자리에는 시험지를 놓으실 필요 없어요. 다 나누었으면 가운데 서서 아이들이 먼저 풀지 않도록 감독하고요, 종 치고 10분이 지난 뒤에 도장을 찍으시면 돼요."
"화장실은 같은 성별의 선생님이 가시면 되고, 금속탐지기는 소리가 크게 울리지 않게 해주셔야 해요. 다른 반 아이들이 놀랄 수 있으니까요."
"시험 종료 10분 전, 5분 전에는 반드시 안내를 해주고, 종이 치면 바로 뒤에서부터 걷게 한 뒤, 반드시 번호와 장수가 맞는지 확인하셔야 해요."
"다 끝난 시험지는 이곳에 버리고, 걷은 시험답안지와 남은 답안지는 여기 담당 선생님께 제출하시면, 끝이 납니다."
쫄래쫄래 따라다니며 배운 순서와 유의사항은 포스트잇에 고스란히 담겨 도장과 펜을 넣은 필통에 1년간 자리 잡았다. FM선생님은 그 포스트잇을 보시고 흡족한 표정을 지으셨고, 나는 그 이후에도 모든 감독을 들어갈 때면 단 하나만을 기억했다.
'내가 감독을 대충 하게 되면, 나를 가르쳐주신 FM선생님께 누가 될 거야. 그러니 처음 알려주신 그대로, 원리원칙대로. 그렇게.'
그래서였을까? 그날 이후 같이 감독을 하게 된 많은 선생님들께서 내가 도장을 찍는 동안 내가 쓴 그 메모를 읽으셨고, 나의 감독 태도에 많은 칭찬을 해주셨다.
"와, 선생님. 어떻게 이렇게 흔들림 하나 없이 감독을 해요? 너무 대단한데!"
기특하고 대견하다는 듯 칭찬을 받을 때면, 항상 나는 이렇게 답하게 되었다.
"헤헤. 저는 FM선생님께서 말씀해주신 대로 한 것뿐인걸요! 이게 다 FM선생님의 가르침 덕분이죠. 이쁘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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