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래서 그렇게 예쁘게 크셨구나

평생 잊지 못할 한마디였다

by 윤소흔


"프린트 연결해 드릴까요?"


"네? 아! 고맙습니다!"




생활안전부에 근무하면서 첫인상이 굉장히 독특했던 선생님이 계셨다. 차가우신 듯하면서도 친절하시고, 그렇다고 다가가기에는 조금은 사무적이신 듯한 느낌. 그런 느낌의 선생님은 처음 내게 다가와 익숙하게 컴퓨터와 프린터를 연결해 주셨다.



너무도 익숙한 연결에 처음에는 생활안전부 선생님이 아닌 줄 알 정도로, 그렇게 차분하고 조용하시며 조금은 거리감이 있는, 그런 분이셨다.



아, 조용한 걸 좋아하시는 것 같은데 나는 시끄러운 편이니, 어쩌면 선생님께서는 불편하실 수도 있겠다. 조심해야지. 그게 내가 처음 생각했던 마음이었다.



부디, 나의 스타일이 선생님께 불편을 안기지 않기를 바라며.




시간이 지나고 선생님과 몇 마디 나누게 되었을 때, 나는 안도했다. 걱정과 달리 선생님께서는 대화하는 것을 무척 좋아하셨기 때문이었다. 굉장히 심플하게 이야기하시는 편이었지만 그 말씀 하나하나에 담긴 긴 관찰과 관심이 좋아서 나는 그 선생님과 자주 대화를 나누었다.



"이럴 땐 번거롭게 하지 말고 학생들에게 부탁하는 게 좋아요."


"이런 상황에서는 학생들을 혼내는 연기를 할 줄 알아야 해요."


"그럴 때에 단호하지 못하면 학생들도 헷갈릴 수 있어요. 아이들을 위해서는 단호함도 보여주셔야 해요."



선생님께서는 처음 교직을 시작하는 내가 병아리 같아 보이셨는지 처음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를 읊어주시며 그에 대한 대비와 생각을 가르쳐주셨다.



"나이스에 들어가면 이렇게 해당 정보를 찾아볼 수 있어요."


"자주자주 이렇게 검색해서 보시면 업무에 도움이 될 거예요."


"모를 때는 혼자 걱정하지 말고 물어보는 게 좋아요. 그러라고 있는 사람이 저 같은 다른 선생님들이에요."



때로는 문제에 부딪혀 끙끙 앓고 있을 때에도, 아무 정보도 찾아볼 줄 몰라 허둥댈 때에도, 선생님께서는 마치 작년에 자신이 겪었던 일인 것처럼 내가 모르는 부분이 무엇이고, 어떤 부분이 막히는 것이며,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가야 하는지에 대해 간결하고도 세심하게 가르쳐주셨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과 길게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이리저리 임팔라처럼 방방 뜰만큼 행복을 누리는 내가 신기해 보이신 것인지, 나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원래부터 개방적이었던 나는 집의 분위기와 부모님의 양육 스타일, 그리고 오빠와의 이야기를 주절주절 읊었는데, 그 말을 듣고 계시던 선생님께서는 문득 즐겁게 말하는 나를 향해 말씀하셨다.


"아, 그래서 선생님이 그렇게 예쁘게 크셨구나."



순간 나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따뜻한 눈빛을 보내며 잔잔히 미소 지으시는 선생님의 진심에 나는 울컥 올라오는 감동을 느끼기 바빴으니까. 선생님은 말을 잇지 못하는 나를 보며 말을 덧붙이셨다.



"제 딸도 선생님 같이 크면 좋겠어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영원히 잊힐 수 없을 한마디였다. 결코 쉽게 할 수 없는 생각이며, 그보다도 내뱉기 힘든 말이었으니까.



누군가의 눈에는 나도 참 구김 없이 맑아서 예쁘게 자란 사람이자, 딸의 미래를 그려볼 수 있는 존재구나. 그동안 길게 관찰하고, 관심을 기울여야지만 할 수 있는 그 아름다운 평가에, 나는 꾹 차오르는 눈물을 머금고 대답했다.



"분명히 따님은 저보다 더 예쁘게 클 거예요. 선생님 같이 좋은 분이 아빠시니까요."




학교라는 곳은 많은 인연이 생기고 또 사라지기 마련이다. 나 또한 이제 막 시작된 수많은 인연들 중에 시간이 흐르면 잊히거나, 사라질 인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선생님과의 대화는 결코 잊히지 않을 것 같다. 나의 성장과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봐주신 선생님이시니까.



그렇기에 확신할 수 있다. 언젠가 대화를 나누다가 걱정스레 흘리신 부모의 역할에 대해, 선생님만큼 잘 해내실 분도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긴 시간이 흐르고 나서, 나보다 더 예쁘고 사랑스러울 선생님의 따님을 보게 된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와! 정말 예쁘게 잘 컸구나!"라고.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2470653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학교의 산타가 건네준 크리스마스 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