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혹시 자리에 계신가요?'
'응? 지금 있지.'
크리스마스.
누구나 들으면 들뜨는 단어였다. 산타에게 선물 받기 위해 일찍 잠에 들거나, 산타를 보겠다며 눈을 애써 감은 채 기다리다가 잠들어버리고는, 아침에 일어나 머리맡의 선물을 확인하는.
기분이 풍선같이 부푸는 특별한 날.
하지만 연인도 없는 내게 있어 크리스마스는 그다지 중요한 날도 아니었다. 그저 '다들 놀러 갈 테니 나이스가 버벅거리지 않아 더없이 좋은 생기부 작성 날'이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토록 낭만 없는 초보 교사에게도 산타는 있었다. 정말 생각도 못한 사랑스러운 산타였지만.
며칠 전 학생에게 연락이 왔다. 평소 내가 가르치는 학생은 아니었고, 같은 부서 선생님의 반이었는데, 나와의 접점은 동아리와 심화 탐구활동뿐이었다.
동아리 때와 별개로 심화 탐구활동을 지도하면서 느꼈던 건, 굉장히 뭐든 열심히 하는 학생이라는 점이었다. 과정에 비해 결과가 안 좋을 때도 있었지만 확신할 수 있는 건, 이 학생을 결코 결과로만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점이었다.
"우리 이쁜이!"
그것이 내가 그 학생을 부르는 애칭이었다. 항상 열심히 하는 모습이 예쁘다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제일 좋다고, 그렇게 그 학생의 태도를 늘 칭찬하고 응원했다.
그래서였을까? 같은 부서 선생님이 담임 선생님임에도 불구하고 그 학생은 나를 무척 따랐다. 다행히도 그 선생님께서도 초보 교사인 나를 무척 예쁘게 봐주셨기에, 나도 마음껏 학생을 응원했다.
학생은 내게 연락해서 대뜸 가습기에 대해 물었다. 가습기를 쓰지 않았던 나는 잘 모른다고 답했고,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했다.
"선생님."
한창 점심을 먹어야 할 시간에 학생이 교무실로 들어왔다. 부장 선생님을 포함한 부서 선생님들이 모두가 계실 때였다.
"아구, 이쁜이! 무슨 일로 왔어?"
"이거 드리려고요."
학생의 손에 들려있는 박스. 그 박스 겉면에는 익숙한 캐릭터 '춘식이'가 자리 잡고 있었다.
"아니.. 이게 뭐야?"
"가습기예요."
이미 이전에 나의 생일을 챙겨주고 싶다며 기프티콘을 주었던 전적이 있었는데,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다시 동아리 회장이 된 기념과 더불어 시험이 끝나고 고생했다며 기프티콘과 이모티콘을 선물했을 때, 그때 주고받는 마음은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1년 동안 감사했다는 의미에서 준비했어요. 그리고 미리 드리는 크리스마스 선물이에요. 고맙습니다."
학생은 자신의 사촌동생이 만지는 바람에 상자가 구겨졌다며 멋쩍어했다. 나는 교무실 한가운데서 어색함과 감동을 동시에 받으며 선물을 받아 들고 연신 중얼거렸다.
"아니.. 네가 무슨 돈이 있다고 이런 걸 샀어.. 샘이 더 뭘 해줘야 하는데 맨날 받기만 해서 어떡하니.."
나의 미안함과 감동이 섞인 말에 학생은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렇게 나도 몰랐던 나의 산타는 가벼워진 마음으로 점심을 즐기러 떠났고, 나는 연신 춘식이 가습기를 끌어안으며 부서 선생님들께 자랑을 하고 또 자랑했다.
고등학생이 되면 결과로만 판단이 되는 경우가 많아진다. 그렇기에 결과가 과정보다 부족한 학생들은 항상 속상함을 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나는 결과만큼이나 과정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학생 또한 아무도 봐주지 않은 자신의 '과정'과 '노력'을 칭찬해주고 응원해 준 선생님에게, 무엇이라도 감사함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결과만이 다가 되는 세상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공부의 틈새에서 뭐라도 시도하고 또 좌절했다가도 다시 일어나는 그 작은 성장들을 마주 보고, 사랑해줄 수 있는 그런 교사가 되고 싶다.
그렇게 된다면 그 아이들은 분명히 자라나서, 또다시 그런 아이들을 길러내는 선순환을 이루어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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