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나의 글 중 '첫 스승의 날 기념은 쿵!'의 남학생을 기억하시는가? 그때 그 학생은 나와 더 매너 있는 남자가 되자고 약속했었다. 그 이후 학생의 달라진 매너에 세 번 심쿵한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첫 번째 심쿵 에피소드는 따뜻한 날 급식지도를 하고 있었을 때의 이야기다. 아이들의 얼굴을 하나씩 외우며 반갑게 인사하던 중, 문득 그 남학생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내가 보이는 곳에서, 편안한 목소리로, 천천히, 내가 놀라지 않게.
"선생님, 안녕하세요!"
그 배려에 나는 웃음을 터트리며 인사를 받았다. 장난칠 때와는 다르게 차분하면서도 듣기 좋은 목소리에(앞으로도 소나무처럼 계속 나오겠지만 나는 목소리에 엄청 예민하다.) 두 손을 흔들며 말했다.
"와! 너 그렇게 목소리 내니까 듣기 좋다~!"
"오.. 그런가요? 식사는 하신 거죠? 아, 선생님. 이거요."
"이게 뭐야?"
"저쪽에 피는 꽃이에요. 샘 드리려고 가져왔어요."
급식지도 힘내세요! 남학생은 젠틀하게 인사를 꾸벅하고는 웃는 얼굴로 줄의 끝을 따라갔다. 연하남에게 이렇게 꽃을 받을 줄이야. 한동안 이 사진은 나의 프로필사진이 되었다.
두 번째 심쿵했던 에피소드는 그 학생이 얼마나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를 느꼈던 순간이었다.
나는 대학생 때 무릎을 다치는 바람에 날이 춥거나 갑자기 바람이 세게 불면 한쪽 다리를 절룩일 만큼 아파했다. 항상 아픈 것은 아니지만 예고되지 않고 찾아오는 통증은 꽤 불편하고 서러운 일이었다.
어느 날 추웠던 주말이 지나고 그 남학생이 있는 반에 들어갔을 때였다. 앞자리에 앉아있던 학생은 대뜸 내게 안부를 물었다.
"선생님, 주말 간 잘 지내셨어요?"
"응? 그렇지? 늘 그렇듯이 공부하고 지냈지. 왜, 주말에 무슨 일 있었어?"
나는 뜬금없는 안부에 그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끔벅였는데, 뒤에 이어 나온 학생의 대답에 탄식했다.
"주말에 갑자기 날씨가 추워졌잖아요. 선생님 날씨 추워지면 무릎 아파하시니까요. 주말 간 선생님 괜찮으신가 하고 걱정되었어요."
와! 이렇게 멋지고 젠틀한 남자가 또 어디 있을까! 이렇게 나는 또 한 번 심쿵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마지막 에피소드는 학교 축제날의 일이었다. 그 학생이 있는 곳 앞자리가 내가 앉은자리였고, 이 학생은 기타 연주를 위해 내게 응원을 받고 나가 멋진 연주를 끝내고 왔다.
내 바로 뒤에 앉아서 조잘조잘 떠들며 무대에 흘러나오는 새로운 노래를 알려주고 학생의 무대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쯤,
"꺄!!"
"와!!"
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무대가 시작되었다. 바로 힙합! 학생들은 빠르고 거침없는 무대에 신이 나서 소리를 질러대며 즐겼다. 그리고 소리에 예민한 나는 슬슬 고통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톡톡-!
"선생님, 귀 괜찮으세요? 제 이어폰 빌려드릴까요?"
학생은 걱정이 담긴 표정으로 자신의 이어폰을 주섬주섬 꺼내며 물었다.
"어? 응.. 샘 괜찮아.."
"괜찮으신 거치고는 자세가 자꾸 뒤로 가시는데요? 선생님 소리에 예민하셔서 이렇게 큰 소리 힘들어하시잖아요. 너무 힘드시면 말씀해 주세요. 제 이어폰 빌려드릴게요."
귀를 찢을듯한 함성과 빠른 랩 사이에서도 똑똑히 들린 학생의 말들. 그 말들에 나는 깊게 탄식했다.
아. 이토록 배려심이 넘치고,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도 멋지게 성장할 수 있는, 예쁘고 고운 새싹이었구나. 그저 장난 한 번 친 것으로 문제아로 낙인찍히거나, 미움을 받을 아이가 절대 아니었구나. 내가 그날 보았던 이 아이의 진심과 순수함이 맞았던 거구나.라고.
어쩌면 날 넘어트렸던 그날, 혼내고 미워하고 끝났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지 못한 이유는 그저 많은 장난기로 인해 받은 오해가 쌓여, 자신을 짓누르고 있던 학생의 눈동자 속 죄책감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빛나는 순수함은 절대 내게 화를 낼 수 없게 만들었다.
그래서 약속했었다. 매너 있는 멋진 남자가 되자고. 그리고 1년도 되지 않는 찰나의 시간 동안 학생은 그 약속을 지켰다. 자신의 행동과 말을 통해서.
나를 만났기에 바뀌었다고 이야기하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 학생은 원래 그렇게 매너 있고 멋진 아이였고, 나는 그저 그 새싹을 보고 예쁘다. 한마다 해준 것이 전부였을 뿐이니까.
이제 그 학생은 앞으로도 분명 멋지고 매너 있는 사람으로 살아갈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또 다른 예쁜 새싹을 찾아 사랑을 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선생님인 내가 해야 할 숙명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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