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님의 커피는 첫 커피

팬은 아이돌의 역조공을 거절하지 않긔

by 윤소흔


"저기, 파란 옷 입은 사람 보이지? 저 사람이 여기 실세야. 혹시라도 저 사람이 괴롭히면 말해요. 내가 혼내줄게요."


"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잘 부탁해요."




정신없이 쌓여있는 짐들 사이로 걸어 나오신 파란 옷의 선생님. 편안한 웃음으로 인사를 건네시던 분을 보며 내가 처음 따르게 될 부장선생님이 바로 저분이시구나.라고 생각했다.


생안부의 부장님이시라면 굉장히 딱딱하고 무섭지 않을까?라는 물음표를 박살 낸 사람은 웃기게도 나였다. 그 과정도 엄청나게 단순했는데, 하나하나 친절하게 인수인계해 주시던 부장님의 목소리에 뿅 반해버린 탓이었다.



세상에 어쩜 이런 목소리가 다 있을까? 미쳤다, 미쳤어. 웃으실 때도, 전화를 받으실 때도, 대화하실 때도 미쳐버린 목소리구나. 진짜.



'세상에 목소리 좋은 사람 중에 나쁜 사람은 없다'와 '목소리 좋은 사람은 의무적으로 일정기간은 선생님, 아나운서, 가수 중에 하나를 반드시 해서 온 세상 사람들에게 목소리로 힐링을 주어야 한다'라는 신조를 가진 내게 부장님은 더 이상 무섭거나 어려운 분이 아니라 그저 '아이돌'이셨다.



"다녀오셨어요!"


"고생하셨습니다!"


"내일 뵈어요, 부장님!"



아이돌 부장님, 오늘도 번쩍번쩍 빛나신다! 너무 멋지세요! 세상에, 완벽하셔라. 대체 못하시는 게 뭐세요? 아, 그만 멋지기를 못하시는구나!



중학생 시절에도 이렇게 아이돌을 응원해보지 않았는데. 있는 없는 주접멘트를 날리며 방방 뛰던 자칭 부장님 팬이라는 삐약이 선생님을 보고, 학기 초 부장님은 부끄러움에 비명을 지르시며 교무실에 들어오시지도 못하셨다.




사실 주접을 모두 빼고, 팬심을 싹싹 다 지우고 보아도 부장님은 멋진 분이셨다. 1을 드리면 100으로 받아주시는 분. 한결같이 고마움을 표현해 주시는 분. 항상 든든하게 응원해 주시는 분. 정말이지 인간적으로도, 인성적으로도 빠짐없이 멋지신 분이었다. 그래서 많이 배우고 싶었다.



팬심을 한껏 드러내며 쫄래쫄래 응원을 드리던 어느 날, 내게 팬심을 증명할 순간이 다가왔다.



"오우, 이게 뭐예요?"


"커피예요. 한번 마셔볼래요?"


"으음.."



원래 커피를 마시지 않는 나에게 있어서는 고민할 거리도 되지 않을 질문이었다. 하지만 그 커피를 권하는 사람이 아이돌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지지 않을까?



"원래는 안 마시지만 아이돌 부장님께서 타주시는 거니까 마셔볼래요."


"으악!"


"원래 팬은 아이돌의 역조공을 거절하지 않습니다. 후후."



그렇게 받아 든 메이드 인 아이돌 부장님 커피는 커피초보의 손에서 야금야금 사라졌고, 바닥을 보이게 되었을 때쯤 나는 깨달았다.



커피를 안 마시던 사람이 커피를 마시면 배가 아프다는 사실을.




"오.. 부장님? 제가 놀라운 걸 알게 되었어요."


"뭔데요?"


"커피를 마시니까.. 배가 아파요."


"아니.. 그걸 다 마셨어요? 아니.. 그걸 왜 다 마셔요.. 적당히 마셨어야..(말잇못)"


"아이돌께서 주신걸 어떻게 남겨요! 당연히 다 마셔야죠!"


"(이마짚).. 어서 보건실 가서 속 쓰림 방지제라도 받아서 먹어요."



결국 아이돌을 너무 응원한 팬은 보건실에서 속 쓰림 방지제를 타다 먹어야 했고, 아이돌 부장님께서는 대책 없이 따르는 팬을 보며 고개를 저으셨다.




그 이후로도 팬의 덕질은 계속되었고, 부장님은 나날이 팬의 응원을 받고 더 멋져지셨다.



참 다행이었다. 팬심을 그대로 예쁘게 바라봐주시는 좋은 분이라서. 인간적으로 멋진 분을 맘껏 응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늘 내게 고맙다고 말씀해 주시는 부장님이었지만, 나는 반대로 늘 부장님께 감사했다. 처음의 시작에서 부서 부장님과의 관계 또한, 앞으로의 교직생활에 큰 지침이 될 것이니까. 그것을 올바르고 아름답게 설정해 주신 분이시니까.



언젠가 나도 부장이라는 위치에 오르게 된다면, 부장님 같이 따뜻하고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 교사가 와서 응원해 드린다고 조잘거리고 따라도 그냥 있는 그대로의 마음으로 봐주며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부장님께서 내게 그러셨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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