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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흔 Feb 20. 2024

어깨동무 새 동무 미나리 밭에 앉았다당!

불속성 효녀는 이렇게 엄마의 무릎을 무리시켰다


"어깨동무 새 동무 미나리 밭에 앉았다!"


"엄마! 또! 또!"


"어깨동무 새 동무 미나리 밭에 앉았다!"


"꺄!!"




엄마와 함께 떠난 강원도 속초의 1박 2일 데이트. 데이트의 늦은 , 도착한 숙소에는 침대 에 해가 걸려있었다. 그 해가 왜 그렇게 좋았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그 해가 엄마와 나를 지켜줄 것만 같았다.



1박 2일 동안 숙소에만 머물고 있기에는 아이들의 시간은 너무도 길었고, 어릴 적 나는 그래도 아이라고 체력이 좋았다. 엄마는 저녁쯔음 내게 바닷가를 구경 가고 싶냐고 물으셨고, 나는 그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우리 모녀는 낭만적이라고들 하는 밤 바닷가를 돌아다니게 되었는데, 사실 너무 오래전이라 정확히 기억나는 것은 없다. 오히려 아주 깜깜해서, 그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철썩이는 파도소리와 바람에 무섭기도 하고 신기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지만 그런 곳마저도 엄마와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는 기분 좋은 곳이 되었는데, 그렇게 만들어준 것은 바로 '노래 부르기'였다.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이 노래를 아실지 모르겠지만, 노래 가사는 간단했다.



'어깨동무 새 동무 미나리 밭에 앉았다!'



이 간단한 노래가 즐거운 이유는 다름 아닌 율동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율동은 딱 6살 배기 아이가 좋아할 만한 '앉았다 일어나기'였다.



"어깨동무 새 동무 미나리 밭에 앉았다당!"



엄마는 내가 즐거우라고 일부러 노래의 끝을 앉았다당! 하며 재미있고 익살스러운 가사로 바꿔 불러주셨다. 그래서인지 간단하고도 재미있는 앉았다당! 에  박자를 맞춰 앉았다 일어나면, 괜히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함께 걷는 엄마와 손을 꼭 붙잡은 채 그렇게 바닷가를 걸으며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왜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저 즐거웠다. 내 옆에 엄마가 있고, 엄마의 손에 든든함이 있고, 그 든든한 엄마와 같이 걸음을 맞추는 것도 모자라 앉았다 일어나기까지 함께 맞춘다는 그 상황 자체가 6살 아이에게는 행복 그 자체를 선사해 주었다.



"어깨동무 새 동무 미나리 밭에 앉았다당!"



길고 길어서 끝도 없던 바닷가를, 몇 번이고 또 노래 부르며 걷고, 앉고, 일어나고를 반복했다. 그리고 그 끝에 다시 되돌아올 때는 결국 엄마에게 업혀와 숙소에서 잠이 들었다.




"엄마, 그때 몇 번이나 앉았다 일어났어?"



글을 쓰면서 문득 물어본 질문에 엄마는 고개를 저으시며 말씀하셨다.



"진짜 엄청나게 했지. 적어도 백번은 했을걸. 거기다가 그렇게 앉았다 일어날 때 꼭 나도 같이 하래. 좀 쉬어볼래도 쉬지도 못하게 계속 시키더라고."


"진짜? 그래서 계속 앉았다 일어났어?"


"그럼 어떡하니, 네가 좋다는데. 그러고 나서 결국 숙소로 돌아갈 때는 다리 아프다고 업어달래서 업고 와서 잤어."



엄마의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깊은 한숨 섞인 대답에 얼마나 배를 잡고 웃었는지. 다시 생각해 봐도 아찔하셨나 보다.



그런데 엄마의 답을 듣고 나서도 내가 고개를 끄덕이게 된 것이 있었다. 이 미나리 율동을 그날 이후에도 집에서 어디든 걸어갈 때면 항상 즐겨했는데, 내 기억 속에 단 한 번도 엄마가 싫다거나 쉬자고 하신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이의 걸음이 해봤자 얼마나 되겠나. 저 짧디 짧은 노랫말이 끝날 때쯤에 해봤자 세 걸음 걸으면 많이 걸은 것일 텐데, 그렇다면 어른이신 엄마의 걸음으로는 한걸음 반정도밖에 안되었을게 분명했다.



생각해 보시라. 조잘조잘거리는 6살 아이를 손에 꼭 쥐고, 노래 부르며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고 한걸음 반마다 앉았다 일어나기를 백번 반복하는 것이 얼마나 아찔할지.



나 또한 중학생 시절 체육시간에 단체 기합으로 앉았다 일어나기를 120번 해봤을 때, 다음날 다리가 굳어 움직이지 않을 정도여 봐서 안다. 그것이 절대 쉬운 일도, 당연한 일도 아니라는 것을.



그렇지만 엄마는 해내셨다. 낯선 곳에 딸만 데리고 무작정 떠난, 긴장이 가득했을 여행의 끝에서도. 단 한 번의 거절도 없이 끝까지, 엄마는 내 손을 잡고 몇 번이고 앉았다 일어서셨다.



단지, 자신의 아이가 행복하기를 바라시는 마음으로. 작은 아이의 웃음을 이어주고 싶으신 마음으로.




아이의 세상에는 부모뿐이다. 그리고 생각보다 값비싸거나  많은 것을 바라지도 않는다. 단지 이렇게 자신의 곁에 있어주는 것. 그것만이 아이가 바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아이의 손을 꼭 잡고 몇 번이고 앉았다 일어나는 것. 이것이 진정한 부모가 아닐까? 나는 오늘날에도 부모라는 존재는 이런 것이라고, 망설임 없이 이야기한다.



철없이 그저 행복했던 그날, 불속성 효녀는 그렇게 엄마의 무릎을 무리시켰다. 하지만 다시금 여쭤봐도 엄마는 그 시간을 후회하지 않으셨다.



나도 조금 더 시간이 흘러 내 손을 꼭 잡게 되는 나의 아이가 생긴다면, 아이와 미나리 노랫말을 흥얼거리며 앉았다 일어나야겠다.



그때의 나처럼 환하게 웃을 수 있게, 기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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