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를 만나다.

by 윤슬

나는 가끔 어린 시절이 생생히 떠오른다.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5~6살 때의 기억이다. 동생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서 우리 식구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엄마손을 잡고 나는 시골로 향했다. 동생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맡겨졌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밭에 일하러 나가시면 나는 집에서 혼자 남아 시간을 보냈다. 시골이라 전파가 안 잡혀서 TV도 잘 나오지 않았고 장난감도 없어서 딱히 할 것이 없었다. 비가 오는 날에는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바라봤고 작은 새, 벌레 등을 관찰하면서 놀았다. 참 지겹고 어렸지만 지독하게 외로웠다. 호기심 많고 궁금한 것도 많을 나이인데 아무도 없는 집에 덩그러니 있게 되니 오죽 심심했을까? 할머니 할아버지께 이쁨 받고 싶은 생각에 방청소도 하고 부엌에 들어가서 정리도 해놓았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칭찬하시면 뿌듯했다. 내가 심심할까 봐 할머니는 나를 밭에도 종종 데리고 가셨는데 멀리서 차가 오면 엄마가 올 거라는 생각에 엄마를 목 놓아 부르곤 했다.


그때 이 세상에 혼자라고 생각한 것일까? 나는 남들보다 지나치게 냉소적이고 이성적인 때가 많다. 지독하게 외로울 때 어린 시절 시골에서 홀로 지내던 기억이 난다. 그때 엄마에게 버림받았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엄마하고 애틋하고 정서적 깊은 유대감을 가진다. 나는 그런 것이 없다. 엄마를 좋아하는 것과는 별도로 큰 애착관계가 없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상당히 오랜 기간 지내고(정확한 기간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시 엄마를 만났을 때 무척 어색했던 기억이 있다. 살면서 힘들면 엄마가 생각난다고 하는데 난 그렇지 않다. 나는 왜 엄마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가지는 애틋함이 없을까?라고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생각 끝에 엄마의 부재를 경험한 어릴 시절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물론 내가 형제가 많아서 독점적인 사랑을 받지 못한 것도 한몫을 했지만 엄마를 간절히 원하는 시기에 엄마가 없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상처를 남겼다.


물론 그때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엄마를 원망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린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엄마가 필요하고 사랑받고 싶다고 말한다.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할아버지 할머니 비위를 맞추려고 노력했던 경험들은 남들 눈치를 많이 보는 사람으로 자라나게 했다. 지금도 나는 주위 사람들은 지나치게 의식하고 행동한다. 모나지 말고 튀지 말아야 어른들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었으니깐. 엄마의 부재 속에 살던 시절의 경험들은 가끔 아주 생생하게 떠오른다. 혼자 많이 상처 받고 엄청난 스트레스 속에 지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상처 받고 살아간다. 내 안에 상처 받은 유년시절의 나가 있다. 그 유년시절은 내가 죽을 때까지 안고 가야 할 것이다. 지독한 고독감을 느낄 때나 힘들 때 유년시절의 나를 만난다.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은 것이다. 그럴 때면 아무 의미 없지만 부모님을 원망해보기도 한다. 낳아놓고 충분한 사랑을 못 줄 거면 나를 왜 낳은 거야? 우리 부모님은 객관적으로 봤을 때 나쁜 사람들은 아니다. 나름 처해진 상황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오신 분들이시다.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부모가 아니듯이 우리 부모도 실수를 하신다.


내가 아직 비혼인 가장 큰 이유는 과연 좋은 부모, 엄마가 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나처럼 이렇게 어릴 시절의 상처는 평생 간다. 범죄자들을 살펴보면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경우가 많다. 처음에는 범죄자를 욕하다가도 가정환경을 들으면 저런 환경 속에 내가 자랐다면 나는 어땠을까? 이런 생각도 든다. 나는 상처도 많고 불완전한 인간임을 뼈저리게 느낀다. 아직 나는 부모가 될 자신이 없다. 상처 받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을까? 유난히 밝고 구김살 없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가정교육을 잘 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저렇게 키워 낸 부모들 역시 좋은 사람들일 것이라는 생각도 더불어 든다. 흔히들 하는 말이지만 가정환경이 중요하다는 말! 살면서 점점 맞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내가 자식을 낳아 그 자식이 잘 자라게 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이렇게 상처도 많고 아직 인격적으로도 덜 성숙한 나에게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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