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아직은 나에겐 수많은 다른 소년들과 다를 바 없는 한 소년에 지나지 않아. 그래서 난 너를 필요로 하지 않고, 난 너에게 수많은 다른 여우와 똑같은 한 마리 여우에 지나지 않아.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나는 너에겐 이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될 거야.”
그녀는 ‘어린 왕자’의 한 부분을 나지막이 읽었다. 그리곤 나를 바라봤다.
“너도 나에게 그랬어. 수많은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지. 그러나 이제는 아냐. 너는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야.”
그녀가 이 말을 했을 때까지도 나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에게 중요한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이 기쁘기까지 했다. 그녀를 그만큼 사랑했으닌깐. 어느 누구도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녀는 너무 사랑스럽고 아름답다. 단언컨대 내가 본 그 누구보다 아름다웠다. 그런 그녀가 나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나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 바로 '어린 왕자'였다. 그 책을 항상 손에 지니고 다녔다.
그녀와 사랑에 빠진 후에 우리 둘은 늘 붙어 다녔다. 몇 달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일상과 그녀를 병행할 방법을 찾았다. 그녀는 그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자신의 일상 모든 것은 나와 함께 하고자 했다. 그런 그녀가 귀엽고 고마워 보일 때도 있었지만 난감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미 길들여졌어. 서로에게 중요한 의미란 말이야. 나는 항상 너와 함께 하고 싶어.”
“인간에게는 혼자만의 시간도 필요해. 이해해 줬으면 해”
“난 이해가 안가. 서로 소중한 존재이고 우린 함께 해야 된다고 생각해”
그녀가 이렇게 간절히 나를 바라보면 할 말을 잃게 된다. 하지만 이젠 단호해져야 할 때이다.
“네가 소중한 사람이지만 사람 사이에는 적당한 거리도 필요한 거야”
“넌 나에게 책임이 있어. 너 없이는 안되게 나를 길들였어.
“그건 이것과 달라.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은 다른 문제야”
“너 나에게서 멀어지려는구나”
“그런 것이 아냐. 너와 더 가까워지려는 거야”
이러한 말다툼 뒤에 우리 사이는 어색해졌다. 그녀는 그전과는 달랐다. 무척이나 슬퍼 보였다.
“난 친구가 없어. 네가 처음이자 유일한 친구야. 그런 네가 나를 밀어내다니 난 절망적이야”
그녀의 고백에 난 당황했다. 이렇게 이쁜 그녀에게 많은 친구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어릴 적 엄마가 돌아가시고 엄격한 아버지 손에 자랐다. 아버지는 그녀를 언제나 혼자 두었고 또래 친구를 사귈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녀는 몹시 외로웠고 책 속에서 위안을 삼곤 했다. 그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책이 ‘어린 왕자’였다. 어린 왕자를 읽으면서 자신을 투영하곤 했던 것이다. 그제야 나는 그녀가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그녀의 집착도 그녀의 슬픔도. 그러나 난 그녀의 지난 아픔을 보듬어 줄 만큼 큰 그릇은 되지 못했다.
“네가 그런 환경에서 자라났다는 것 몹시 유감이야. 하지만 너의 모든 아픔을 이해하고 받아줄 수 있을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나는 처음 가지는 연인에게 강한 집착을 보이는 그녀를 감당해낼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그녀와 서서히 멀어져 갔다. 시간이 흘러 나는 몇 번의 사랑을 하고 가정을 꾸렸다. 아이에게 어린 왕자를 읽어주면서 나는 그녀가 떠올랐다. 새삼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좀 더 성숙했다면 그녀를 보듬어 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녀는 혼자서 얼마나 많이 '어린 왕자'를 읽었을까? 그러면서 그 고독과 외로움을 견뎌내 왔을 것이다. 아내 없이 혼자서 딸아이를 키우면서 잘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녀와 같은 아픔을 가지지 않게 만들겠다고 다짐한다.
“아빠 길들인다는 것은 뭐야?”
“서로에게 소중해진다는 거야. 아빠랑 우리 딸처럼....”
"아빠 이 책 참 좋아. 나도 나중에 길들여질 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