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변하지 않았다

by 윤슬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때까지 쓴 일기장이 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고향인 부산이 아닌 서울에 구하면서 그동안 내 짐을 정리했다. 나의 일기장을 다른 물건들과 잘 정리하여 박스에 담아 두었다. 시간이 흘러 나의 기억에서 사라졌는데 어느 날 엄마가 부산 집을 수리한다면서 내 물건이 든 박스를 서울로 보내겠다고 하셨다. 그때까지도 나는 그 박스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몰랐다. 도착해 온 박스를 열자 일기장과 함께 다른 추억의 물건들이 들어 있었다. 일기장을 보자 과거로의 추억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찬찬히 일기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 보았다. 중학교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 10년간의 나의 일상을 알 수 있었다. 내가 무슨 고민을 했고 무엇을 느꼈는지 말이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변하지가 않았다.


중학교 때 쓴 일기장 한 귀퉁이에서 현재 나의 똑같은 생각을 하는 과거의 나를 발견했다. 한편으로 중학생의 사고가 이토록 높다는 사실도 더불어 깨달았다. 중학생이라고 무시하면 안 될 것 같다. 지금의 나와 중학생이던 내가 외모적으로만 변했지 속은 그대로이다. 오히려 일기장을 읽으니 어느 면에서는 지금의 나보다 나은 구석도 있었다. 내가 그대로라는 사실은 처음에는 놀라웠다. 나보다 한참 어린 친구들을 보면서 ‘너희가 뭘 알겠어?’‘참 좋을 때다’이렇게만 바라봤다. 중학생 시절의 난 그 누구보다 치열했고 아는 것도 많았다. 마냥 좋지만은 않은 시절을 보낸 것이다. 일기장 내용 중에 가장 웃기면서도 놀라웠던 것은 중1 봄에 쓴 일기였다.

‘나도 이제 14살이 되었으니 나의 신조를 세워야겠다’


이러면서 자신의 신조를 1,2,3,4... 하면서 세운 부분이었다. 14살짜리가 신조를 세우다니 처음에는 내 눈을 의심했다. 내가 생각하는 14살이 아니었다. 삶의 신조를 중학생이 세우는구나. 놀라운 깨달음이었다. 신조라고 세운 부분에 적힌 글들은 읽으니 내가 추구하는 바와 별반 다르지가 않았다. 나의 가치관은 중학 때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다. 나의 중학생 시절 포부 넘치는 선언(?)을 다시 보니 과연 그대로 살고 있는지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다음으로는 인상적인 것은 고민이 많던 대학교 3 시절 일기장에 쓴 내용이었다. 제목이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었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구구절절 써 놓았다. 내용을 보고 있자니 어디선가 멋진 말들은 다 넣어서 만든 허세 쩌는 내용이었다. 있을 수도 없는 이상향을 일기장에 적어두고는 감동스러워했을 것이다.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나는 거창한 계획을 세웠었다. 공부도 잘하고 술도 잘 마시고 놀기도 잘 놀고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하고 연애도 잘하는 대학생이 되어야겠다. 그렇다 보니 나의 대학시절은 엄청 바빴다. 이것저것 욕심은 많아서 벌려놓고 그것들을 겨우겨우 해낸다고 힘이 부치는 나날들이었다. 최고로 바쁘던 대학교 3학년 때 나의 이상향을 적어 놓은 것이다. 지금은 나의 한계를 많이 깨닫고 대학생 때처럼 욕심부리지 않지만 기본적인 성향은 아직도 남아있다. 나의 한계치를 시험하듯이 스케줄을 짜고 일정을 소화하지 못하면 자책한다. 나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내가 변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리 쉽게 변할 것 같지는 않다. 물론 소소한 변화 정도는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나의 특성을 잘 파악하면 내가 행복해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과거의 나를 통해 현재의 나를 이해하고 그리고 미래의 나를 예측할 수 있지 않을까? 과거-현재-미래를 관통하는 큰 줄기의 나는 변함이 없고 같을 것이다. 과거의 일기장 속의 나를 보면서 현재의 나를 되돌아보고 미래의 나를 준비한다. 나를 잘 아는 듯하지만 가끔 나는 너무 낯설고 어색하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일기를 쓰면서 나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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