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걱정, 불안, 긴장

by 윤슬

대학 졸업 후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두 번의 이직 후 3번째 회사를 다닐 때였다. 외국계 반도체 관련 소프트웨어 업체였다. 연봉도 괜찮았고 복리후생도 나쁘지 않았고 추가로 받는 스톡옵션도 있었다. 무엇보다 자유로운 사내 분위기도 좋았다. 그전에는 로펌에 다녔는데 업무는 마음에 들었지만 보수적인 분위기가 참을 수가 없었다. 그것이 퇴사하고 그 업종을 떠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합격 연락을 받고 나는 기뻤지만 걱정도 앞섰다. 업무를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었다. 합격하고 보니 다른 직원들은 모두 석박사 출신에 학벌도 좋았다. 비루한 대학의 학사출신인 내가 왜 뽑혔는지 이해가 잘 안 될 정도였다. 내가 맡은 업무는 개발자들과 세일즈 부서 사이에서 가교 역할이었다. 영어능력과 반도체 관련 기술 그리고 코딩도 할 수 있어야 되었다. 큰 업무는 정해졌지만 세세한 업무와 일정은 본인이 정하고 주, 월, 분기로 업무보고를 영어로 해야 되었다. 자유로운 분위기는 좋았지만 맡겨진 책무는 컸다. 영어회의나 외국 직원이 올 때면 못하는 영어로 겨우겨우 해쳐 나갔다. 영어로 이메일을 보내거나 문서를 작성할 때면 시간은 배로 들었다. 영어학원을 다니고 따로 공부를 한다고 해서 드라마틱하게 나의 영어실력이 늘지는 않았다. 적성에 맡지 않는 코딩도 버벅거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중간에서 개발 엔지니어들에게 세일즈 부서의 요구를 반영하여 개발하게 하는 일은 끝없는 회의와 메일 주고받음 그리고 결과 확인이라는 무한반복의 연속이었다. 거의 2년 동안 다니면서 나 자신의 한계도 많이 느꼈고 내가 어떤 성향이고 어떤 업무환경을 선호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많은 고민 끝에 회사를 그만뒀다. 그 전에는 다음 회사를 정하고 그만뒀지만 이번에는 좀 쉬고도 싶었고 설마 굶기야 하겠냐? 는 생각을 하면서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무엇보다 이 사실을 부모님께는 비밀로 했다. 아신다면 반대하셨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자 처음에는 일단 원 없이 아침잠을 잤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백수의 가장 큰 장점이다. 늦게 일어나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슬슬 움직일 준비를 한다. 영화도 보고 평소 주말에 사람이 많아서 가기 꺼려졌던 전시회장도 갔다. 평일 낮시간에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 처음에는 무척이나 어색했다. 나도 어디론가 가야 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곧 그러한 생활에 익숙해지고 어영부영 시간은 훌쩍 한 달이 지났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의미하게 한 달이 지나간 것이다. 그 한 달 동안 느낀 것은 숨만 쉬어도 돈이 어마하게 든다는 사실이다. 백수라 아끼고 아끼면서 살았지만 기본적으로 드는 돈은 무시무시했다. 가계부를 써서 아무리 쳐다보아도 어느 구석 뺄 곳이 없었다. 꼭 필요한 물건을 살 때는 남은 잔고를 염두해서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매일 잔고를 확인하면서 이 돈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체크하는 긴장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집으로 의료보험이 직장에서 지역으로 변경되었음을 알리는 통지서가 날아왔다. 그제야 내가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은 완전 자유인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내가 어디에도 적을 두지 않았다는 것은 나를 몹시 불안하게 했다. 재취업을 위해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영어학원과 원하는 곳을 취업하기 위한 학원을 다녔다. 다시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학원과 공부를 하는 타이트한 생활을 이어갔다. 과연 원하는 회사에 입사할 수 있을 것인가? 내가 하는 이 길이 맞는 것인가? 하는 질문은 계속되었다. 부모님에게도 알리지 않고 이렇게 도전하는 것이 잘하는 것인지도 의문이 들었다. 토익시험 결과가 나쁘거나 공부가 잘 되지 않을 때 그리고 줄어든 잔고를 확인할 때 걱정은 더 심해졌다. 취업준비를 하는 동안 사인 곡선을 그리듯 나의 감정은 오르락 내리락을 되풀이했다. 걱정, 불안, 긴장이 끊임없이 반복되어 나타났다. 원하는 기업의 채용공고가 드디어 떴다. 많이 준비하지 못한 것이 걱정되었지만 최선을 다 했다. 결과는 낙방이었다. 더 준비해서 입사하고 싶었지만 잔고가 얼마 남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에 채용이 있었던 기업에 다행히 합격했고 입사하기로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잔고가 거의 간당간당하게 있을 무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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