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그때 왜 그러셨어요?

by 윤슬

초등학교 아니 정확히는 국민학교 3학년 때 일이다. 내가 국민학교를 다닐 때는 현재와는 많이 달랐다. 체벌이 허용되었으며 학생의 인권 따위는 훈육이라는 명목 하에 개나 줘버리는 시절이었다. 그러던 시절 나는 국민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에게 소위 찍혔다. 이유인즉슨 학년 초 학부모 간담회를 하면서 이른바 촌지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가정형편도 형편이었고 엄마는 학교를 찾아올 정도로 극성맞지 않았다. 학부모 간담회도 오지 않았고 아이를 잘 봐달라는 촌지도 건네지 않았다. 그 결과 학년 초 학급 간부를 뽑기 위한 시간에도 나는 호명되지 못했고 수업시간에 발표를 하기 위해 아무리 손을 들어도 나는 지목되지 못했다. 하지만 국민학교 3학년도 세상 돌아가는 것은 다 알았다. 그것이 촌지 때문이라는 것은 정확히 알 수가 있었다. 학급 간부가 되거나 수업시간에 지목받는 애들은 어린이날 선물꾸러미를 들고 오는 학부모가 부모인 애들이었다.


하루는 수업시간 준비물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 준비물을 챙겨 오지 않은 애들이 줄을 서서 선생님께 야단을 맞았는데 내 순서가 다가왔다. 앞에 애들은 손바닥 몇 대 맞는 것으로 끝이 났으나 나는 달랐다. 선생님 눈빛이 너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었고 회초리로 머리부터 온몸을 사정없이 맞았다. 그때 나를 때리던 선생님의 눈빛은 이성을 잃어 보였다. 국민학교 입학하고 선생님에게 이쁨만 받던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한참을 맞고 선생님의 증오 섞인 말을 듣고서야 나는 내 자리로 돌아갈 수 있었다. 나를 때릴 때 나의 육체는 물론 심하게 아팠다. 그러나 그것은 어느 정도 참을 수 있었다. 또래 친구들이 이 처참한 광경을 다 보고 있다는데서 오는 수치심 그리고 친구들 눈에 나는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안도감과 동시에 공포를 읽을 수 있었다.


한 번은 짝지끼리 시험 점수가 높은 애가 낮은 애의 뺨을 신발로 때리라고 선생님이 지시했다. 그때 내가 점수가 높아서 내가 짝의 뺨을 신발로 때려야만 했다. 그때 내 짝지가 ‘난 괜찮으니깐 어서 때려~’라고 말했을 때 정말 마음이 아팠다. 한참 후에서야 고민 끝에 때렸는데 내가 때리던 그 둔탁한 소리와 느낌은 아직도 기억난다. 맞은 짝의 얼굴은 부끄러움과 수치심으로 빨갛게 달아올랐고 때리는 나도 몹시 힘들었다. 교실 곳곳에서 신발로 뺨을 때리는 소리가 들렸고 선생님은 그 광경을 바라봤다.


시련은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한 번은 선생님이 하루 휴가를 내셔서 하루 종일 자율학습을 했는데 그때 내가 교실에서 떠든 적이 있었다. 그다음 날 점심시간 도시락을 먹고 있는데 선생님이 부랴부랴 화가 나셔서 교실로 들어오셨다. 그런 다음 나에게로 와서 어제 네가 떠들었냐면서 발로 나를 걷어차기 시작했다. 나는 꼬꾸라졌고 선생님의 발에 수십 번을 맞았다. 온갖 저주와 심한 말을 나에게 쏟아부으면서 말이다. 이렇게 치욕스럽게 누구에게 맞아 본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너무 놀라서 눈물도 나오지가 않았다. 그날 집으로 걸어오면서 이 사실을 집에 알려야 하는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다. 만약 말한다면 부모님이 무척 슬퍼하실 것이고 왠지 선생님에게 촌지를 줄 것 같았다. 어린 나이이지만 나는 그 선생님은 그럴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혼자 견뎌보기로 나는 마음먹었다.


그 이후 나는 학교생활이 무척이나 의기소침해졌다. 전처럼 수업시간에 손을 들지 않았다. 학급 간부에도 욕심내지 않았다. 학교생활이 무척이나 지루하고 재미없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내가 선생님에게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그다지 신명 나게 학교생활이 되지 않았다. 다행히 그렇게 나서지 않아도 알아주는 선생님을 만나 다시 학교생활에 재미를 붙이기는 했지만 국민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에 대한 트라우마는 매우 켰다. 내 인생의 가장 치욕스러운 순간은 선생님에게 맞았을 때 바로 그때이다. 모든 선생님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내가 그런 선생님을 만난 것은 지독한 불운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에는 행운도 찾아오지만 이렇게 불운도 찾아온다. 슬프고도 아픈 내 가슴 한 편의 어두운 과거 한 페이지를 이렇게 열어본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생생하게 그때의 아픔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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