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비겁함에서 도망쳐야 할 때

by 윤슬

“지금 보시는 저 작품은 미켈란젤로의 조각 작품 피에타입니다. 미켈란젤로의 최대 걸작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죽은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잘 표현하였습니다. 여기서 잠시 작품 감상하시겠습니다.”

여기는 이탈리아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이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가이드를 한지 벌써 2년이 지났다. 오늘같이 푹푹 찌는 여름이면 가이드하기 정말 힘들다. 관광객들이 유리 넘어있는 피에타 작품을 본다. 예술을 하나도 모르는 사람도 이 작품을 보면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나도 예전에 그랬었다. 사진으로 보던 피에타를 처음 실물을 보았을 때! 예수의 물결치는 머리카락과 성모 마리아 품 안에서 성스럽고 평온한 죽은 예수의 표정. 축 늘어진 몸통의 갈비뼈 사이사이의 근육. 힘없이 늘어진 느낌의 인체 팔과 다리 표현. 땅으로 길게 늘어져 있는 예수 오른팔의 미세한 근육과 핏줄. 성모 마리아의 풍성하고도 넓은 치마의 주름 하나하나의 디테일함. 죽은 예수를 바라보는 슬픔과 복잡 미묘한 성모 마리사의 표정. 예수를 앉은 모습이 어색하지 않게 성모 마리아의 몸이 아래로 갈수로 커지는 시각효과.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한 나로서는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 감탄이 이내 절망으로 변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찰흙으로 이것저것 만드는 걸 좋아했다. 재능을 살려 자연스럽게 대학도 조소과로 진학하게 되었다. 미켈란젤로는 조각하는 사람들에게 바이블 같은 존재였다. 책으로 볼 때도 감탄했는데 실제로 봤을 때 죽은 예수를 품에 앉은 마리아의 슬픔이 나에게도 전해져서 눈물이 나려고 했다. 훌륭한 예술작품은 사람을 진정으로 감동시킨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대학 입학 후 조각을 더 배우기 위해 이탈리아로 유학을 왔다. 나도 훌륭한 조각가 되고 싶었다. 아니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며 이탈리아행 비행기를 탔다. 이탈리아는 전 세계에서 예술을 배우려는 사람들의 집합소였다. 각국 나라에서 온 친구들은 모두 훌륭한 재능으로 예술혼을 불살랐다. 거기서 깨달았다. 나에게 재능이 없다는 것을. 한국에서는 내가 잘하는 줄 알았다. 이제 와서 보니 남의 것을 비슷하게 베끼는 정도였다. 여기 친구들은 모방을 해도 창조적으로 했다. 어쩜 저런 작품을 만들까? 할 정도로 아이디어가 좋았다. 과제를 제출할 때마다 좌절했다. 여기서 예술가로서 입지를 다지겠다던 야심 찬 포부는 어디로 가고 점점 작아지는 나를 발견했다. 자신감을 잃어갔다. 그렇게 재미있던 조각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만든 작품은 하나같이 엉망 같아 보였다. 작품을 일렬로 세우고 평가를 할 때면 정말이지 죽고 싶었다. 내 작품이 제일 허접해 보였다. 그렇게 2년을 버티다가 학교를 휴학했다. 집에 와서 그동안 만든 작품은 다 부셔버렸다. 나에게 수많은 영감을 줬던 미켈란젤로는 따라 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이었다.


이대로 한국을 다시 갈 순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쪽팔렸다. 왜 그만두고 돌아왔냐고 물었을 때 할 말이 없었다. 일단은 여기서 버티기로 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쉬운 데로 가이드를 시작했다. ‘미술 전공자가 설명하는 바티칸 투어’ 이런 네이밍으로 손님을 끌었고 나의 지식이 요긴하게 쓰였다. 죽으란 법은 없는지 손님은 끊임없이 생겼다. 다른 가이드와 차별성을 두기 위해 자료조사도 많이 하고 가이드할 때 동선도 신경 썼다. 투어 하는 관광객을 보고 나이 때별 날씨별 다양한 시나리오를 짜서 대응했다. 나의 설명에 반응하는 관광객을 보면서 어쩜 이 일이 나에게 더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각은 내가 이일을 하기 위해 거쳐간 것일 뿐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자 다들 작품 감상 잘하셨나요? 지금은 그만뒀지만 저도 조각을 전공했어요. 미켈란젤로는 정말 천재인 것 같습니다. 언제나 봐도 감탄이 저절로 나옵니다.”

“왜 그만뒀어요?”

이때 관광객 중 초등학생이 나에게 물었다.

“저는 미켈란젤로처럼 재능이 없어서요. 타고나야 되는 것 같아요.”

“에이~ 책에서 읽었는데 미켈란젤로는 천재가 아니라 노력가래요. 미켈란젤로는 조각을 하려고 사람 해부까지 했대요. 멋지지 않아요? 조각하려고 해부까지 하고. 그 정도는 해야죠.”


순간 얼굴이 빨개졌고 관광객들은 다 같이 웃었다. 순진 난만한 아이가 한 말이었지만 내 속을 관통했다. 나머지 가이드는 어떻게 했는지도 알 수 없게 끝났다. 로마 시내 외곽 허름한 숙소로 돌아왔다. 씻지고 벗지도 않고 침대에 대자로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방안 구석에 있는 조각도구함이 보였다. 2년 동안 잊고 지냈던 아니 잊으려고 애썼던 조각이었다. 그냥 못한다는 생각만 하고 노력은커녕 도망만 쳤다. 나는 비겁하다.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도 조각을 포기한 것도 비겁함 때문이지 않는가? 이대로 비겁한 채로 살아갈 것인가? 나는 갈림길에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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