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소설입니다.
나는 신인 작사가다. 직장을 다니면서 작사가의 일도 한다. 그러기를 벌써 4년째 하고 있다. 내가 작사가로서의 삶을 산다는 것은 회사에서는 물론이거니와 가족과 친한 친구에게도 비밀이다. 혹시나 부정적인 말들로 내 꿈이 꺾이게 될까 봐 주저되기 때문이다. 나조차도 과연 내가 작사가로서 먹고살 수 있을까? 의문스러울 때가 많은데 남에게까지 비판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지는 않다. 운 좋게 작사가로 몇 곡 데뷔는 했지만 거의 무명이나 다름없다. 내가 작사한 노래 중에 대중에게 알려진 히트작이 없기 때문이다. 막연히 작사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때 보다 데뷔를 한 후가 더 막막하다. 노래가 히트 치는 것은 운같기도 하고 노래 멜로디의 문제인지 나의 문제인지 알 수가 없다. 직장을 다니면서 작사의 일을 해서 혹시 절박함이 덜한 것은 아닌가? 나에게 되물어 본다. 아직 작사가로서 수입이 거의 전무한 상황에서 무턱대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몰입할 수는 없다. 꿈만을 좇아 현실을 외면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매일 습작과 노래 가사들은 분석하면서 나의 실력을 쌓아나가는 수밖에... 그리고 나에게 작사 의뢰가 왔을 때 잘 써내는 것! 운이 좋아 그 곡이 히트곡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곡 의뢰는 계속될 것이고 작사만으로 먹고사는 날이 오지 않을까? 조심스레 꿈꿔본다. 그러던 어느 날 음반 관계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2시간 뒤에 녹음 들어가야 되는데... 가능할까요? 가수는 이소라예요. 노래 데모파일은 카톡으로 보내드릴게요.”
“네. 알겠어요.”
가수 이소라라니... 그리고 주어진 시간 2시간!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 시각 나는 퇴근길이었고 바로 아무 정거장이나 내려서 근처 눈에 보이는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커피숍에 자리를 잡고 앉아 휴대폰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잘 쓰고 싶었다. 나에게 찾아온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아마 수십 명의 작사가들에게 콜이 갔을 것이다. 조심스렇게 데모파일을 들었다. 곡는 장중하고 엄숙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 전체적으로 슬픔이라는 감정이 많이 떠올랐다. 클래식곡 같은 느낌도 들었다. 도입부는 잔잔하고 클라이맥스 부분으로 점점 치고 나가다 절정에 이르러서는 감정이 폭발하고 말았다. 소름이 돋았다. 너무 좋았다. 반드시 내가 이곡에 가사를 쓰고 싶었다.
조심스레 멜로디에서 가사를 입힐 음절 음절을 떼어내기 시작했다.
00000 0000 00000
0000 0000 0000000
000000 000 000
........
가사를 만들 글자 수가 나왔다. 잠시 가수 이소라를 생각해 봤다. 독특한 음색과 카리스마로 마이너 한 감성을 가진 듯 하지만 또한 대중적이기도 한 사람. 특유의 짙은 화장과 튀는 의상 중저음의 그녀만의 음색을 지닌 가수. 나는 그렇게 생각해 왔다. 대중이 바라보는 이소라에 대한 이미지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 그녀가 만약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한다면... 그녀가 느끼고 받아들이는 이별의 감정은 어떠할까? 한없이 슬퍼한다던가 미련을 가지지는 않을 것 같다. 격한 감정을 내보이지도 않아 보였다. 헤어지고 난 후 일상 속에서 문득 이별의 아픔을 느끼고 그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을까? 슬프지만 그 이별에게서 성숙한 깨달음을 얻는 모습이 떠올랐다. 이렇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자 순식간에 글이 써졌다.
다 완성하고 시간을 보니 35분이 지나 있었다. 음반 관계자에게 완성된 가사를 보냈다. 초조한 시간이 지났다. 13분 후 “이대로 녹음할게요.”라는 연락이 왔다. 잔뜩 긴장했던 온몸이 나른해져 왔다. 집으로 가서 바로 기절했다. 이로서 나는 빠른 작사가로 인식될 것이고 내 커리어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했다.
이소라 새 앨범이 나왔다는 홍보기사와 함께 여기저기 방송활동도 재게 되었다. 인터넷으로 새 앨범을 검색하니 ‘바람이 분다’ 나의 곡이 타이틀곡이었다. 심장이 요동치고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내가 작사한 곡이 타이틀이라니… 그전에 작사한 곡들은 모두 타이틀곡이 되지 못했었다. 이소라 씨가 라디오에 나와 새 앨범 소개하면서 ‘바람이 분다’가 흘러나왔다. 내가 쓴 가사에 이소라 씨의 감성적인 목소리가 더해지니 의도한 대로 담담하면서도 짙은 슬픔이 묻어나는 노래가 되었다. '바람이 분다'의 대중의 반응을 살폈다. 역시 이소라라는 말과 함께 가사가 좋다는 평이 많았다. ‘바람이 분다’는 히트를 쳤고 저작권료가 정산되었을 때 앞으로 작사가로서만 먹고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유의미한 금액이 입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