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크리스마스-죽음에 담담해지기]

by 윤슬

우리는 언젠가 모두 죽는다. 이 사실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된다. 아무리 큰 부와 권력을 가졌더라도 삶을 영원히 지속시킬 수 없다. 가끔 나의 마지막은 어떠한 모습일까? 상상해 본다. 나의 장례식장에는 누가 올까? 마지막 순간 어떤 생각을 할까? 언제 죽을지 아는 것이 좋을까? 그렇지 않을까? 여기 시한부 삶은 살아가는 한 남자가 있다. 사진관을 운영하는 남자는 시한부의 삶을 살아가지만 겉으로는 평범하다. 매일 손님을 맞이하고 사진을 찍고 인화하는 과정을 덤덤히 꾸려나간다. 그런 그에게 호감을 보이는 여자가 등장하지만 그는 밀어내지도 다가가지도 않는다. 그는 죽음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만약 사소한 감기인 줄 알고 병원에 갔는데 삶이 6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면 어떤 행동을 할까? 절망, 분노, 후회, 슬픔, 좌절 등을 거치다 결국에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체념의 단계가 될 것이다. 그리고 남자처럼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 그것밖에는 할 수가 없다.


남자는 죽은 후에 홀로 남게 되는 아버지를 걱정한다. 사진관에서 쓰는 기계 사용법을 아버지에게 가르쳐주면서 그만 버럭 화를 낸다. 자꾸 가르쳐도 틀리는 아버지를 보면서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에 다시 화가 난 것이다.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남자가 감정을 내보인다. 덤덤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문득문득 죽음이 떠올리면 이렇게 젊은 나이에 죽는다는 사실이 억울하고 분한 감정이 생긴다. 엉뚱하게 아버지에게 감정을 쏟아붓지만 이내 후회한다. 장례식장에서 곡소리가 많이 나면 남은 사람들이 힘든 경우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예를 들면 처자식을 두고 죽은 사람의 경우와 무병장수하시다가 돌아가신 경우 장례식장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죽음에 경중을 따지기는 힘들지만 사람들의 생각은 그렇지가 않다. 남자에게 부양하는 가족이 있는 경우라면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은 달랐을 것이다.


가족사진을 찍으러 한 가족이 오는데 모두 떠난 후에 할머니가 찾아온다. 남자에게 영정사진을 찍어달라는 부탁을 하러 온 것이다. 할머니에게 영정사진을 찍어 드리고 남자도 자신의 영정사진을 찍는다. 본인의 영정사진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언제 죽을지 모르고 사는 것이 대부분이고 아마도 그런 생각에 체 미치지 못한다. 죽음은 이렇게 우리에게 가까이 있는데 없는 것처럼 행동하고 살아간다. 인지한다고 한들 별 뾰족한 수는 없지만 말이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내야 한다. 죽음 앞에 초연한 남자가 인격적으로 대단해 보였지만 대다수의 우리도 남자와 같은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시한부 인생을 살든 아니든 같은 어제와 오늘을 살게 될 것이다.


죽음에 대해 담담해지는 것은 어쩜 우리가 살아내기 위한 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슬픔의 감정에만 빠져있다면 어떻게 살 수 있겠는가? 이런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한때는 참 힘들었다. 첫 조카가 8살에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했다. 내 인생의 제일 큰 슬픔과 절망을 맛보았다. 조카 장례식장에서 조카 유치원 졸업사진이 영정사진이 되었다. 슬픔에 빠져 장례를 치르고 있었고 그 와중에 나는 배에서 꼬르륵거리면서 배가 고팠다. 조카의 죽음앞에서도 배가 고프다는 사실이 너무 싫었고 내가 동물같이 느껴졌다. 게걸스럽게 밥을 먹었고 맛은 인정하기 싫지만 정말 맛있었다. 하긴 하루종일 울기만 했으니깐 체력 소모가 상당했을 것이다. 배가 고픈 것은 당연한 것이였지만 이런 내가 처참했고 치욕스러웠다. 어떤 상황에서도 기본 욕구를 느끼는 인간 아니 동물인 것이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다.


지옥 같던 장례식이 끝나고 긴 슬픔이 있었지만 시간이 흘러 이젠 눈물 없이도 조카를 이야기할 수 있다. 죽음 앞에 담담해진 것이다. 신은 우리에게 망각이라는 선물을 주었고 이것은 인간에게 너무나도 필요한 것이다. 언젠가 부모님도 나도 죽을 것이다. 부모님의 장례식장에서 나는 슬퍼하겠지만 식욕을 느끼고 밥을 먹을 것이다. 더 이상 거기에 죄책감이나 부끄러움을 느끼지는 않는다.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나는 살아갈 것이고 세상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잘 굴러가고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삶을 영위한다. 죽음은 유별날 것도 없는 일상의 과정이며 삶의 일부이다. 남자가 죽고 아버지는 사진관을 그럭저럭 운용하고 남자가 죽을 줄 모르는 여자는 남자가 찍어준 자신의 사진을 보고 웃는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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