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 끝을 모르는 깊이

미안하다 사랑한다

by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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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사람을 어디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


난 언제나 사랑에 비겁했다. 나를 온전히 상대방에게 보여주기 주저했고 언제나 내가 우선순위였다. 사랑은 그다음 후 순위였다. 사랑이 나를 완전히 잠식할까 두려 웠고 나를 망치게 될까 봐 조심조심 굴었다. 사랑이 나의 인생을 주도하게 될까 봐 겁이 났다. 대학교 때에도 수업을 빠지지 않고 다 들었고 내 생활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내에서만 연애를 했다. 내 영역에 타인이 침범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것이 올바른(?) 사랑이라고 생각했고 성숙한 사랑이라고 자부했다. 많은 것을 주는 남자에게 감동도 했지만 동시에 부담도 느꼈다.


모든 것을 온전히 내어주는 사랑을 하는 사람을 보면 처음에는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그들에게서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기쁨에 충만한 표정을 보았다. 그 표정을 나는 결코 가질 수 없을 것이라는 패배감과 그들에게 존경심이 들었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여주인공 은채는 사랑에서만큼은 열정적이다. 죽을 정도로 사랑을 한다. 사랑한다는 말도 수십 번 외친다. 그 사랑에 대한 뜨거움이 그녀를 집어삼킬 것 같아 보였다. 남자가 죽어가고 있음에도 진심으로 슬퍼하고 그럼에도 함께 하길 희망했다. 남자가 죽고 여자도 따라 죽었다.


자신의 목숨까지 내던지는 사랑 앞에 나는 한없이 작아지기만 한다. 그렇게 조심조심 사랑한다고 나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언제나 받은 만큼만 되돌려 줬고 내가 더 좋아하는 기분이 들면 자존심 상해했다. 먼저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도 그가 먼저 고백하길 기다렸고 아니면 그냥 포기했다. 조건을 비교해 가며 이 정도면 큰 무리가 없겠다는 사람과 안정적인 사랑만 했다. 과도한 이해와 희생이 필요한 사랑은 애초에 차단했다. 그래서 난 얼마나 더 행복해졌고 얼마나 대단한 나를 지켜냈는지 모르겠다.


남자 머리에 총알이 박혀 시한부 인생을 산다는 사실을 내가 알았다면 그를 멀리했을 것이다. 죽어가는 그를 위로하고 인내하고 죽음까지 볼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지독히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다. 그건 아마 남자에게 더 큰 상처가 될 것이다. 안다 그렇기에 사전에 그런 경우를 두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비겁하지만 이것이 나의 변명이다. 세상의 모든 사랑이 드라마나 영화와 같지 않다.


마음이 움직이는 데로 사랑을 하고 사랑을 느끼는 그대로 말하고 표현하는 여자. 머리로 계산한 뒤에 행동하고 받은 만큼 돌려주는 여자. 사랑의 깊이는 알 수 없지만 얼마나 깊은지 바라만 보고 풍덩 들어가 보질 않았다. 발만 조금 담가보았을 뿐이다. 뭐가 그리 조심스럽고 주저되었는지 알량한 자존심인지 내적 허영심인지 모순 덩어리이다. 여주인공처럼 무서움도 없이 빠져들어 간다면 무엇을 느끼게 될까? 아마도 깊은 슬픔을 느끼겠지만 동시에 충만한 행복감도 느낄 것이다. 사인 그래프로 표현하자면 나는 진폭이 낮은 그래프이고 여주인공은 진폭이 큰 그래프를 나타낼 것이다.


여주인공은 남자 무덤 앞에서 죽었고 그 끝이 해피엔딩인지 알 수가 없다. 목숨을 바쳐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사랑을 위해 어느 것 하나 버리지 못하는 나에게는 다가갈 수 없는 경지이다. 버리지 못해 가진 것은 또 무엇이고 버려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나의 얇고 계산적인 사랑 앞에 여주인공의 사랑은 숭고하게 빛이 난다. 전부를 건 사랑을 하기엔 난 애초에 그른 것은 아닐까? 뜨거운 심장이 아니라 얼음같이 차가운 심장만이 뛰고 있을 뿐이다. 여주인공은 사랑은 찾아 잠들었고 나는 사랑을 떠나 홀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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