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 따라 변하는 사랑의 빛깔

[봄날은 간다]

by 윤슬

사랑의 빛깔은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변한다. 10대에 했던 풋사랑과 시간이 지난 후의 사랑의 모습은 같지 않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처한 환경에 따라 같은 사람이라도 다양한 사랑의 빛깔을 띤다.


사랑에 순애보적인 남자와 한 번의 결혼 경험이 있는 여자가 만나 사랑하고 이별한다. 처음 ‘봄날은 간다’를 봤을 때 남자에게 공감이 되었다. 여자가 그 유명한 ‘라면 먹고 갈래요?’라고 남자를 유혹했고 사랑을 리드해 나갔다. 남자보다 사회적으로도 자리를 잡았고 성숙한 여자에게 남자는 매력을 느꼈다. 그러다가 여자의 마음이 식었고 헤어짐을 요구했다. 여전히 남자는 여자를 잊지 못해 괴로워했다. 술도 마시고 여자를 미행도 하고 급기야 차를 훼손시키다가 들키기까지 했다. 남자 맘속에 들어왔다가 그냥 떠나버리는 여자는 야속하고 무책임했다. 힘들어하는 남자에 비해 평온한 일상을 보내는 여자가 보는 내내 미웠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고 묻는 남자는 식은 여자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별로 남자는 친구에게도 악을 쓰고 회사생활도 잘하지 못했다. 반면 여자는 딴 남자와 데이트를 하고 별다른 것 없는 삶을 영위했다. 그러다가 불쑥 남자에게 다가와서 다시 사랑하자는 여자! 여자의 뻔뻔함에 어이가 없었고 타인의 감정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본인 마음에만 충실한 여자가 미웠다. 순진한 남자를 유혹해서 데리고 놀다 버린 카사노바 같은 여자라고 생각했다. 어쩌다(?) 그런 여자를 만나 마음고생하는 남자가 안타까웠다. 남자는 여자를 감당하기에 너무 순진하고 순수한 영혼이었다. 여자는 본인 감정에만 충실하고 남자가 받은 상처에는 냉정했다. 남자가 힘들어하는 모습에도 그건 너의 몫이지 네 몫은 아니라는 여자의 태도는 불같은 사랑은 다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사랑에는 책임이 따르고 의리(?) 같은 것이 존재한다고 믿었던 나는 여자를 도저히 이해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었다.


세월이 흘러 다시 영화를 봤다. ‘라면 먹고 갈래요?’라고 연하의 남자에게 먼저 다가서는 용기! 부러웠다. 난 아직 그런 용기를 가지지 못했다. 여자 다시 보니 멋있었다. 여자의 말에 정말 라면만 먹고 곤히 잠든 남자! 남자는 순진한 것이 아니라 어디가 모자란 것이 아닌가? 의심했다. 이혼의 경험으로 진지한 만남에 거부감이 있는 여자에게 남자는 부모님을 만나자고 했다. 이때부터 여자의 마음에 변화가 있기 시작했다. 영화를 다시 보고서야 그 미세한 변화를 알 수 있었다. 남자가 아직 자리 잡지 못한 상황, 여자와 미래를 꿈꾸는 남자를 보는 여자는 마음이 복잡하다. 그런 여자의 마음을 이해하기에는 남자는 미성숙했다. 여자의 감정 변화를 인지하지 못했고 자신의 감정에 빠져 허우적대기나 했다. 헤어지자는 여자를 불쑥 찾아오고 일도 집중하지 못했다. 남자가 스토커처럼 굴었지만 여자는 화를 내지 않았다. 바보처럼 구는 남자를 이해하고 감정을 추스르도록 내버려 둘뿐이었다. 여자는 사랑 때문에 자신을 버리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다. 아마 그전에는 그런 사랑을 해보지 않았을까? 추측을 해본다. 여자는 남자의 애 같은 응석을 담담히 바라만 볼 뿐이었다. 다시 용기를 내서 남자에게 다가갔다. 거절 받을 확률이 높지만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기로 했다. 여자는 이렇게 용감했다. 남자에게 거절당했지만 여자는 그런 남자의 마음조차 이해했다.


좀 더 어린 여자와 남자가 만났다면 어땠을까? 좀 더 사랑을 해본 남자와 여자가 만났다면 어땠을까? 여자와 헤어지고 남자는 아마 그전과는 다른 사랑을 할 것이다. 남자의 미래가 여자일지도 여자의 과거가 남자일지도 모른다. 그들이 봄날은 갔지만 다른 이와의 다른 봄날이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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